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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가을비로 찾아온 비의 시인, 정진석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입력 2018-11-09 00:00   수정 2018-11-09 00:00

창밖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안개가 뿌연 추억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생각나는 사람, 그리움이 마음을 마구 흔들어댑니다.

굽은 나무 등걸 타고 내리는 외로움, 눈물 되어 우울해진다하기도 합니다. 비가 오면 술 생각이 난다거나, 파전, 녹두전 등 지짐이가 먹고 싶다하기도 하더군요. 매운탕이나 짬뽕 같은 매콤한 것이 당긴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옥외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모처럼 맞는 휴식시간입니다. 생활 속에 묻혔던 자신을 돌아볼 여유, 소중한 시간인 게지요. 자기를 보듬는 두터운 자성자애 시간입니다. 홀로 자신을 덕지덕지 색칠해보기도 한답니다. 정겨운 사람과 함께 차 한 잔에 온갖 수다,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하더군요.

필자는 중학교 다닐 때 편도 8km를 걸어 다녔습니다. 들고 다니는 책가방 무게도 10kg은 족히 되었던 것 같아요. 왕복하고 나면 공부할 체력이 모두 고갈되지요. 비라도 올라치면 들길이 진흙탕으로 변해 걷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책가방도 주체하기 어려워 우산은 무척 귀찮은 존재였지요.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 어머니께서 우산을 챙겨주었지요. 담 모퉁이 돌아서며, 어머니 몰래 우산을 울안으로 던져놓고 비 맞으며 걸었습니다. 춥기도 하고, 처음엔 젖은 옷이 감당하기 어려웠지요. 맞다보니 빗물이 옷 사이로 스며들어 몸을 간질이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형언하기 어렵지만, 혼자 가는 길에 많은 사색이 깔려 있었지요. 몰래 먹는 달콤함이랄까, 비오는 날이면 으레 비 맞으며 걸었답니다.

비와 물안개, 눈물, 그리움, 추억, 정, 술, 무지렁이라도 뭔가 그려질 것 같지 않은가요? 비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나 봅니다. 비를 소재로 하거나 노래한 예술작품은 무척 많지요, 장르 불문입니다. 빗줄기 사이로 창문 두드리는 실루엣이 있습니다.

"나는 비를 참 좋아한다. 빗속엔 신의, 자연의, 연인의, 아이들의, 정을 그리는 사람들의 손짓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으레 비를 맞은 후에 시를 쓴다. 만일 비가 내리지 않는 때는 반드시 머리를 찬물에 빗질하고 시를 쓴다. 이것은 나의 시작에 있어서 하나의 철칙이다."

정진석(鄭眞石, 1951 ~ , 문학박사) 시인은 부여읍 가탑로에 살고 있습니다. 윗글은 그의 첫 시집 『사월리 비타령』(1981) 후기에 담긴 내용입니다. 왜 그런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요. 떠돌이 생활, 실향민적 잠재의식이 비와 만난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입니다. 전쟁 중에 태어난 사람 대부분 크게 다를 바 없겠지요. 어려서 떠도는 생활을 많이 경험 합니다. 초중고 학창시절은 대전에서 보냅니다. 공주에 유학한 후 대전에서 학업을 마칩니다. 세간에 회자되는 역마살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떠도는 생활은 바뀌지 않습니다. 공직자나 교사 또한 떠돌이 생활을 많이 하지요. 충남 곳곳을 두루 돌며 교직생활을 합니다. 퇴직 십여 년 전부터 부여에 정착한 듯 보입니다.

본 칼럼 집필목적 중 하나가 지역 예술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특별함이 너무 많아, 시인의 소개는 다음으로 미룹니다. 한 가지, 시인은 거대한 신념, 용광로 같은 열정, 집념이 무척 강하고 집요합니다. 아주 치밀하고 철저한 성격의 소유자이지요. 필자같이 허접한 사람에게 그의 존재는 아주 높은 산이었습니다. 주눅 들게 만들었지요. 미술이 전공이라서 한 가지 예술분야에 전념 하겠다 그러기도 하였지만, 아예 글쓰기를 단념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에 대한 경외감이랄까? 그 같은 사람이나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지금은 달리 생각합니다. 노력하면 누구라도 세계적 수준이 될 수 있다 믿는 편입니다. 최고는 몰라도 말입니다.

나이 들어 작가의 길로 접어드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띕니다. 일종의 만학이요, 변신이지요.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신념, 열정이면 충분합니다. '팔십종수八十種樹'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80에 과일나무 심는 것을 보고 비웃자, 내가 열매를 따지 못하면 후손이라도 딸 것 아닌가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큰 광영을 얻고자 글 쓰는 것은 아니겠지요. 먼지 같은 미세한 반향도 좋지요. 연꽃 씨앗처럼 수천 년 후에라도 한 송이 꽃으로 누군가에게 피어난다면 족하지 않을까 합니다.

시 감상 하나 하고 갈까요? 정진석 시인의 시 「용산리 ? Ⅰ」전문입니다. "이슬을 행주질하고 / 봄보리랑 눈정 나눈 / 햇살이 내울 건너 / 열리는 마을 // 산66번지 바람에 / 밀리고 밀리는 둑새풀이여 / 참새들은 풀파도를 타고 / 달구지 길 따라 / 산사의 염불 내리고 / 시킴굿 무녀인 양 / 춤추는 학두루미 // 학춤에 고부라졌던 해가 / 소나무에 걸려 / 노을가루가 날린다 // 들녘에 녹아드는 어스름 / 옥싸라기 뿌리듯 / 정갓골 청솔바람이 / 달빛을 흩이고 간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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