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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만땅] 궁예의 18년 집권… '관심법'에 출생의 비밀까지 "드라마틱해"

[원종문의 오복만땅] 121. 궁예

입력 2018-11-18 10:35   수정 2018-11-18 10:35

궁예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김영철씨가 궁예역을 맡아 큰 화제를 모았다.
나라를 세우고 임금으로 집권한 기간이 겨우 18년밖에 안 되는데 "궁예"라는 이름은 그동안 역사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고 오락물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온 국민들에게도 "궁예"라는 이름이 익숙하게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궁예"라는 이름은 그의 외모 때문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이 연상되기도 한다.

박혁거세는 박 씨의 시조이고, 김알지는 김 씨의 시조이며, 석탈해는 석씨의 시조이지만 "궁예(弓裔)"는 궁 씨의 시조가 아니다. 궁예는 출생의 비밀이 있어서 출생한 년도가 분명하지 않은데 궁예의 성씨는 김(金)씨이며 신라 사람이고, "궁예" 의 아버지는 신라 47대 헌안왕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궁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도 하고, 신라 48대 경문왕 응염(膺廉) 아들이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궁예(弓裔)"라는 이름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의 후예라는 뜻의 이름인데 실제로 이름처럼 궁예는 활 쏘는 솜씨가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예가 태어난 것은 음력 5월 5일인데 그가 태어나자 방안에 밝은 광채가 나고, 그가 태어난 집의 지붕에서 밝은 광채가 무지개처럼 하늘로 뻗쳐 있어서 천문을 관리하는 일관(日官)이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5월 5일 단오 날에 태어난 것도 기이하고, 밝은 광채가 하늘로 뻗쳐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이빨이 나있고, 눈에는 광채가 범상하지 않으니 아기가 성장하면 나라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왕이 일관의 이 말을 믿고 즉시 가서 아기를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왕명을 받은 신하가 그 집에 가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엄마 품에서 강탈하여 죽이기 위해 처마 끝으로 내던지니 처마 밑에서 벌벌 떨고 있던 유모가 얼떨결에 황급하게 떨어지는 아기를 받다가 잘못하여 유모의 손가락에 아기의 왼쪽 눈이 찔려서 궁예의 한쪽 눈이 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비록 한쪽 눈은 멀게 되었으나 유모 때문에 목숨을 구한 궁예는 죽이려는 왕의 세력을 피하여 신분을 숨기고 유모의 손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목숨을 부지하다가 겨우 열 살에 세달사(世達寺)라는 작은 절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가 절을 떠나서 도적소굴에 들어가 "양길"이라는 도적 패와 "기훤"이라는 도적 패 중에 기훤 의 부하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활을 잘 쏘아서 이름을 "궁예(弓裔)"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나 "기훤"이란 도적두목이 잘 대우해주지 않자 일 년 뒤에 양길의 부하로 들어갔는데 양길의 신임을 받아 양길의 부하 일부를 나누어받아서 그들의 대장이된 궁예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일대를 점령하고, 강원도 영월지역으로 진출하더니 강원도 강릉 명주지역과 강원도 삼척을 지나 경상북도 울진까지 세력을 확대하니 궁예를 따르는 무리가 3500여명이나 되었다.

궁예는 이들을 열 네 개의 부대로 편성하여 자기세력의 기반을 다지고, 스스로 이들의 총 우두머리 장군이 되어 강원도 인제지역과 금화지역, 강원도 철원지역까지 점령하니 더욱 군사가 늘어나고 세력이 막강하여지자 896년에는 훗날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의 세력들 까지 개성에서 투항하여 옴으로 궁에는 왕건과 왕건의 아버지까지 부하로 삼았다.

그 후로 궁에는 경기도 양평지역과 강화지역 김포지역을 손에 넣고, 남쪽으로 내려와 충청북도 충주지역과 남양주지역 충북 괴산지역을 지나 청주지역까지 평정하여 세력을 형성한 궁예는 901년에 나라를 세워 스스로 왕위에 올라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하여 "후 고구려"로 하였으며 왕건(王建)에게 "아찬"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904년에는 나라이름을 마진(摩震)으로 연호를 무태(武泰)로 개명하고, 905년에는 수도를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기고, 연호를 무태에서 성책(聖冊)으로 고치었으며, 궁에는 신라가 쇠약해짐을 알고 신라와 합병하려는 마음을 품고 신라를 "멸도(滅都)"라고 부르게 하였으니 멸도란 "멸망할 도시"라는 뜻이다.

911년에 다시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라고 개칭하고, 나라이름도 태봉(泰封)이라고 바꾸며 왕건에게 명을 내려 지금의 나주지역인 금성(錦城)을 치게 하여 해상권을 궁예가 장악하게 되었으며 백제의 견훤(甄萱)을 위협하게 되었고, 913년에 다시 연호를 수덕만세에서 정개(政開)라고 고치었다.

궁예는 자신이 스스로 미륵불이라 하며, 사람의 마음속을 다 꿰뚫어보는 "관심법(觀心法)"을 터득했다며 관심법으로 살펴보니 역심을 품고 있다면서 바른 정치를 간언하는 부인 강 씨를 죽이고 그 소생의 아들도 둘이나 죽였으며 여러 신하들도 관심법으로 보니 역심을 품고 있다고 죽여 버리는 만행을 일삼았다.

왕건도 궁예로부터 두마음을 품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으나 온 백성들의 인심이 궁예를 떠나고 왕건이 국민들의 신임을 받게 되자 918년에 왕건과 왕건의 부하들인 홍유(洪儒),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등에 의해서 왕권에서 쫓겨나고 도망 다니다가 백성들에게 잡혀 죽고 말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분명하지 못하며 도적소굴에서 자라난 출신성분임에도 궁예는 왕이 되었으며, 애기 때부터 한쪽 눈을 실명하여 애꾸눈인 신체적 결함도 극복하였으나 스스로 미륵불이라고 황금으로 의관과 마차를 치장하고 관심법을 핑계로 살생을 일삼아 백성의 민심을 일어서 그의 왕국은 18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역시 악행을 저지르고 민심을 잃으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명문화 되어있다.

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

원종문-명인철학관-원장
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은 사단법인 한국작명가협회 부회장 겸 대전지부 지부장, 한국동양운명철학인협회 이사, 한국작명가협회 작명시험 출제위원장, 국제뇌교육대학원 성명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명리학 전문과정과 경희대 성명학 전문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이름 전문가'로 활동하며 '한국성명학 총론', '명학신서', '이름과 성공' 등의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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