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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평생 콩깍지 씐 눈으로 살게 하소서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8-11-30 00:00
우리가 종종 듣는 말 중에 <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보통 이성 간에 상대방의 단점은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여 호감을 갖고 좋아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남들이 뭐라 하더라도 내 눈에 들면 그것이 최고인 줄 아는 착각 현상인 것이다. 남들 보기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것도 눈에 콩깍지가 씌면 대단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젊은 남녀가 연애를 하게 되면 뇌에서 도파민(dopamine)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도파민이 흐르는 동안에는 상대의 단점은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여서 상대의 모든 점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도파민은 약 2년 정도 지속되며 길게는 3년도 간다 했다. 도파민 분비가 끝나면 권태기가 오는데 그때가 되면 눈에 씐 콩깍지가 벗겨져 그렇게 사랑스럽고 예쁘게만 보였던 애인도 시큰둥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눈에 씐 콩깍지 때문에 마냥 좋아하고 예쁘게만 보였던 애인도 거실에서 쳐다보는 소파처럼 무덤덤한 느낌이 된다고 한다.



화창한 어느 봄날 서울에서 연세의대 남학생들과 이화여대 의상학과 학생들이 단체 그룹미팅을 했다. 의대생 김수돌과 의상학과 나수진은 처음 보는 순간 무슨 전류가 통했는지 서로 반하여 상대방한테서 눈길을 뗄 줄 몰랐다. 원탁 테이블을 마주한 초면의 낯선 자리였지만 서로의 눈빛만은 사랑의 전자파 레저 광선을 쉴 새 없이 쏘아 내고 있었다. 불과 3,4초 사이였지만 주고받은 눈빛의 촉매로 두 사람은 그룹 미팅 끝나자 벌써 연인이 되어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첫눈에 반한 커플이었으니 만나는 순간부터 두 사람은 눈에 콩깍지가 씌어 상대방이 마냥 좋게만 보였다.

남녀 두 사람은 모두 유복한 부유 가정에 태어난 머리 좋은 수재들이었다. 김수돌은 준수한 외모에 잘생긴 얼굴로 여대생들의 인기를 끌 만하였고, 나수진 여대생도 황금분할구도 체형에 날씬하고 예쁜 얼굴로 누가 보아도 매혹될 만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훌륭한 외모를 뒷받침해 줄 만한 내면을 갖춘 위인들이 못 되었다. 외모는 준수하고 예쁜 얼굴들이었지만 가슴 따뜻하게 사는 사람냄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거기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이기적이며 가시적인 것을 중시하는 자존심이 강한 개성적인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비단보에 개똥을 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연애는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남녀 두 사람은 눈에 콩깍지가 씐 덕분에 2년은 잘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티격태격 싸우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유는 성격 차이가 심해서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같은 무렵 대전 근교에 그와 대조적인 청춘 남녀 서영준과 김연희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교회를 다니다가 눈이 맞아 연애를 했다. 영준 청년은 전문대 이과 계열을 졸업한 후 보일러공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연희 아가씨는 가정 사정으로 고등학교 졸업한 후 어머니 곁에서 가사조력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연애로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두 사람도 무슨 콩깍지가 눈에 씌었는지 결혼 후에는 연애시절보다 더 좋아하고 피차간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다. 마냥 행복한 생활이었다. 남편은 성실한 보일러공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었으며, 아내는 부족한 살림에 조금이라도 벌이를 하려고 붕어빵 장수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가정은 넉넉지는 않았지만 부부는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성실하고 가슴이 따뜻하게 사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주민들의 칭송을 입에 달고 사는 잉꼬부부였다. 이들의 삶은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생활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모든 행복이 이집으로 다 모여든 것 같았다. 이집 부부에겐 남다른 행복의 비결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집은 명문대 출신 김수돌과 나수진 부부처럼 재력도 없었고 머리가 좋은 수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명문대 출신들이 가진 재산과 좋은 머리보다 더 소중한 것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바로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냄새 풍기며 인간답게 사는 바로 그것이었다. 거기에다 상호간 신뢰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칭찬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부부이니 상대방의 단점이 보일 리 없고 장점만을 보고 사는 잉꼬부부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눈에 씐 콩깍지는 날이 갈수록 두꺼워져 2,3년이 아니라 20년이고 30년이고 도파민을 만들어가며 살 부부 같았다.

아내가 남편을 왕처럼 존중해 주는 집이니 아내는 자연히 여왕으로 사는 집이었다. 서로가 왕처럼 존중하는 생활이다 보니 단점은 묻혀서 보이지 않고 장점만 발견되는 생활이었다. 피차간에 칭찬으로 사는 것이 생활이 돼 버린 집이었다. 존중하고 칭찬하는 것을 보약으로 알고 사는 부부였다.

이들은 신뢰와 배려와 칭찬과 따뜻한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이어서 눈에 씐 콩깍지는 아무리 벗기려 해도 벗길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의 신뢰와 존중, 배려, 따뜻한 가슴이, 칭찬이, 모든 사람의 식량이 되게 하소서.

이들처럼 상대의 단점엔 눈이 멀고 장점만 뵈는 도파민을 만들어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이들 같이 상대방 장점만 보이는 평생 콩깍지 씐 눈으로 살게 하소서.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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