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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지옥의 삼한사미(三寒四微)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9-01-02 10:27

신문게재 2019-01-03 22면

미세먼지
그날도 하늘이 뿌옜다. 황사마스크를 끼고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섰다. 바닷가 멋진 풍광을 뒤로 하고 자리잡은 태안화력의 위용이 날 압도했다. 높게 치솟은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정문에선 경비원이 들어가는 차를 일일이 체크했다. 다가가서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역시나 안 된다고 했다. 몇년전 태안 여행 중 들렀던 태안화력의 시스템이 늘 궁금했다.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종종 발생하는 사망사고가 뉴스 귀퉁이에 몇 줄 나올 뿐, 그곳의 작업 환경이 어떤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 김용균씨 사고로 내부가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깜짝 놀랐다. 탄광 지하 막장도 그 정도는 아닐 듯 싶었다. 컴컴한 굴 속 같은 곳에서 석탄 덩어리를 실은 컨베이어 벨트가 쉼 없이 돌아가는 곳. 공기 중에 날리는 뿌연 석탄 가루. 그리고 희미한 불빛 아래서 방진마스크를 낀 김용균씨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대학 때 1년간 중촌동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고통처럼 다가온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던 시절이었다. 거기다 밤마다 들려오는 숨넘어가는 외마디 소리가 날 미치게 만들었다. 방 몇 개가 길게 이어진 집이었는데 끄트머리 방 두 개는 아들 부부, 손주들과 노인부부가 살았다. 노인은 평생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다 진폐증이라는 고약한 병을 얻었다. 그래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밤이면 발작을 일으켰다. 근근이 먹고 사는 형편에 병든 노인은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보건소에서 타오는 약으로 연명했다. 지금은 돌아가셨겠지? 가끔 그 집 사람들이 아프게 떠오르곤 한다.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서민의 온기가 돼 주던 석탄은 이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미세먼지 주범으로 전락한 석탄의 문제는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영국발 산업혁명은 획기적인 문명의 발달을 이뤘으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많은 인명을 앗아간 것이다. 벨기에의 뮈즈 계곡, 미국의 도노라, 런던의 스모그는 세계 3대 대기오염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값싼 석탄을 대량으로 사용한 결과다. 특히 런던의 스모그는 닷새 동안 사망자가 1만2천명이었다. 관련 사진을 보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대낮인데도 런던 시내가 한밤중처럼 암흑천지다. 비유가 끔찍하지만 당시 상황이 봉지를 뒤집어 쓴 진공상태서 죽어간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면 이해가 쉽겠다.

반갑지 않은 겨울이 왔다. 언제부턴가 한반도는 겨울이 오면 '삼한사미(三寒四微)'로 고통을 겪는다. 삼일은 한파, 사일은 미세먼지. 바람의 방향에 따라 극심한 추위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한반도를 덮치는 현상이다. 북풍이냐 서풍이냐, 둘 다 문제다. 기후마저 강대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물론 미세먼지는 오로지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요인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편서풍이 불면 한반도는 지독한 '안개'에 휩싸인다. 중국발 미세먼지라는 얘기다. 중국의 경제 성장 역시 석탄이 주요 수단이다. 중국 정부도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앓지만 이웃나라 한국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힘없는 우리는 제대로 문제제기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나는 몇 년전에도 데스크 칼럼에서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을 토로했다. 두통과 기침, 가래, 호흡 곤란. 이젠 거리에서 황사마스크 쓴 사람은 흔한 풍경이 됐다. 한파와 미세먼지의 악순환으로 마스크가 필수인 시대가 돼버렸다. 세계보건기구는 미세먼지를 1군 발암물질로 확정했다. 전문가들은 중금속과 유해물질이 범벅된 미세먼지는 인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경고한다. 치명적인 폐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과연 황사 마스크로, 공기청정기로, 돼지고기로 미세먼지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갈 길이 멀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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