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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도시재생에 거는 기대

송복섭 한밭대 건축공학과 교수

원영미 기자

원영미 기자

  • 승인 2019-01-28 08:20
  • 수정 2019-04-29 10:39
송복섭 한밭대 교수
송복섭 교수

최근 남미를 여행하는 기회를 가졌다. 신비에 가까운 잉카유적의 놀라움과 유럽 문명이 대륙을 달리해 이식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변모하는 독특함도 주목받았지만, 내게는 어려운 경제사정과 이로 인한 치안불안이 여행 내내 신경 쓰게 만드는 골칫거리였다.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됐을까? 브라질은 브릭스로 멤버로 불리며 경제적 신흥강자로 주목받은 지 오래 안됐고, 아르헨티나는 안정된 살림살이를 바탕으로 남미 문화의 주역으로 인정받았으며, 페루나 칠레도 풍부한 자연자원을 기반으로 잠재력과 꾸준한 성장이 예견되는 나라들이었다.

우리는 어땠을까?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식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신앙에 가까운 집념과 빨리 빨리로 불리는 특유의 부지런함이 오늘날 남미의 여러 나라보다 더 잘살고 윤택한 생활을 가능하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여행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그늘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국가 주도로 진행된 경제성장 정책은 일본과 굴욕적인 배상을 담보로 남겼고 베트남전쟁 참전은 장병들의 목숨 뿐만 아니라 후세에 도덕적 짐을 멍에로 남겼다.

우리나라 경제성장 역사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민간자본을 동원한 경제 부양책이다. 정부는 꾸준한 신도시 공급을 통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도로 등 부족한 도시 인프라를 확충했을 뿐만 아니라 건설시장을 활성화하고 연쇄적으로 경제성장이 이어지도록 유도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부가 일정 지역을 새로운 도시로 설정하면 건설회사가 땅을 사고 그 회사는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모델하우스로 보여주며 계약금을 요구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도 필연적 부작용이 나타났다. 집은 살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투자의 대상이자 언제든 쉽게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되었고, 삶의 터전인 동네도 형편이 나아지면 언제든 더 좋은 곳으로 옮겨 갈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비싼 동네와 그렇지 않은 동네로 구분하는 공간적 불평등을 양산하고 말았다.

골목골목 추억이 깃든 장소는 재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헐리고 지워지는 것이 그동안의 개발방식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인구가 꾸준히 늘고 부동산은 물가인상률과 이자수입을 초월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상황은 어떤가? 인구는 늘지 않고 경제성장률도 바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양보다는 질로 욕심보다는 가치로 생각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 내가 사는 집을 얼마를 더 올려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족과 이웃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 것인가로 바꾸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도시재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물리적 개발 중심의 도시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동네가 깨끗하게 개발됐다손 치더라도 화목하던 이웃 관계가 깨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전국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닥칠 기세다. 이에 편승해 건물들을 미리 사들여 시세차익을 누리겠다는 이기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은 버려야 한다. 각종 편법을 동원해 개발사업에 편승하겠다는 사고는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현 시스템에서 불가능하고도 위험한 생각이다.

투기는 횡재가 아니라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개발시대 나만 잘살면 된다는 약탈적 사고보다는 이 기회에 내가 살 동네를 어떻게 멋지게 가꾸고 재생해 행복한 도시생활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다시 남미여행 중 현지에서 나고 자란 젊은 가이드에게 물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현 상황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냐고…. 일부 특권층의 정보 독점과 만연한 부정부패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도시생활의 행복을 되찾는 즐거운 모험이 시작되어야 하는 즈음이다. 모쪼록 우리나라 도시재생에 거는 기대가 크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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