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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나훈아의 '고향역'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9-02-0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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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제공
나이를 먹으면서 옛날 노래가 좋아진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창 때는 새로운 노래에 열광했는데 이젠 요즘 나오는 노래를 도통 모르겠다. 분명 힙합이 매력적이긴 한데 쉽고 흥얼거리게 되는 옛날 노래가 좋다. 낼 모레면 설이다. 예나 지금이나 명절은 기분 좋고 설렌다. 물론 명절 스트레스라는 괴물 때문에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때 아니면 온 가족이 다 만나는 경우는 일년에 몇 번이나 될까.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은 북새통이다. 손에 손에 고향 부모님께 드릴 선물 꾸러미가 한가득이다. 이런 때 한두번 꼭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나훈아의 '고향역'.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분이 모두 다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구수하고 저음이면서 꺾기에 능한 나훈아의 대표곡. 간드러지는 나훈아의 창법과 허리 돌림도 일품이었다.



나의 둘째 오빠는 한때 가수가 꿈이었다. 우리 식구들이 거의 음치인데 반해 둘째 오빠는 노래를 곧잘 했다. 70년대 청운의 꿈을 품고 대전으로 상고 진학을 했으나 가수가 된다는 일념으로 공부는 작파했다. 심지어 서울로 올라가 작곡가를 찾아가 가수를 시켜달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세상에 가수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 두명인가? 노래 잘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냐 말이다. 비현실적인 꿈이지만 포기하기엔 오빠 허파엔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방학 때 집에 오면 웃방에 누워서 손거울을 보고 노래를 열창하곤 했다. 주로 나훈아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 내력' 등을 그 시절 자주 들었다.

결국 오빠는 가수가 되지 못했다. 당시 학교 공부를 좀만이라도 했더라면 시골 농협에라도 취직해서 인생 그저 그렇게 편하게 살았을텐데 말짱 황이 됐다. 그나마 빚이라도 얻거나 땅문서를 훔쳐 가서 서울 가서 돈만 날리고 빈털터리신세가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도 나훈아 노래를 듣게 되면 난닝구만 있고 미간을 모으며 노래 부르던 오빠가 떠오른다. 뭐 꿈이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사람은 각자 삶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그 삶이 실패냐, 성공이냐는 세속의 잣대일 뿐이다. '그리운 나의 고향역~.'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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