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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스나이퍼 sniper} 20. 시일지십(視一知十) 단상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입력 2019-03-07 00:00   수정 2019-03-07 00:00

출근을 하니 분위기가 웅성웅성했다. 이유인즉 전날 무단결근한 경비원에 대한 시말서를 받 고 있었다. "그젠 왜 출근을 안 했습니까? 그것도 무단으로. 더욱이 그렇게나 전화를 했음에도 안 받은 건 또 뭡니까!"

"그게 저……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그러나 표정에선 전혀 진정성을 읽을 수 없었다. 이를 바보가 아닌 직상상사 역시 모를 리 없었다. "그런 사람이 싱글벙글하면서 출근합니까?" "……."

어제 시말서를 쓴 경비원은 아들보다 연하인, 그리고 평소 의뭉하기가 짝이 없는 한 마디로 싸가지 없는 '잡녀석'이었다. 입사 초기부터 아버지뻘 되는 필자에게 툭하면 담배를 꿔달라고 했다. 몇 번 그리했더니 버릇이 되었는지 보는 족족 또 손을 내밀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하루는 작심하고 야단을 쳤다. "000씨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지?" "서른셋입니다." "내 아들보다 어린 사람이 나만 보면 담배를 꿔달라고 하는데 000씨는 아버지를 봐도 그리 하는가?" "……."

"담배를 태울 돈이 없으면 이번 기회에 아예 담배를 끊어! 그리고 다시 한 번 나한테 담배 꿔달라고 하면 넌 혼난다!" 그로부터 000은 필자만 보면 고양이 만난 쥐처럼 모습을 숨기느라 바쁘다.

그랬던 그 '잡녀석'이 무단결근까지 하여 시말서를 쓴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일지십(視一知十)', 즉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비슷한 말에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이 있다.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미루어 안다'는 뜻이다. 올해로 경비원 생활 8년째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결근은커녕 지각조차 하지 않았다. 외려 남들보다 보통 1시간 이상 일찍 출근해서 교대해주기 일쑤였다.

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터득한 '팩트'의 면면(面面)이 몇 개 있기에 공개한다. 먼저 이 직업은 1년 단위 계약직이다. 이런 까닭에 평소 근무성적이 안 좋으면 다음 해 고용계약에서 사인을 할 수 없다. '자동 해고'라는 얘기다.

더욱이 000처럼 평소 인사까지 할 줄 모르고 근무매뉴얼에도 반하는 행위인, 슬리퍼나 질질 끌고 다니며 철록어미(담배를 쉬지 않고 늘 피우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처럼 행동하는 자는 필자가 직장상사였다면 진작 내쫓았을 게 틀림없다.

봄이 다가왔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린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터 나온다. 어떤 씨앗은 제 껍질을 머리에 이고 새 떡잎이 올라온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처음 나온 새싹은 연둣빛으로 파랗지만 새싹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움터 나오는 새싹의 여린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싸가지가 없으면 기르나 마나다. 곡식도 싸가지가 있어야 하지만 사람도 싸가지가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싸가지가 없으면 커서도 알곡 없는 쭉정이가 된다. '쭉정이'는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아니한 곡식이나 과일 따위의 열매를 뜻한다. 쓸모없게 되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어른을 봐도 인사를 할 줄 모르며,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허릅숭이가 인간 쭉정이인 셈이다. 000이가 꼭 그랬다는 느낌이다. 필자는 20대 초반에 전국 최연소 사업소장으로 승진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소장 알기를 똥 친 막대기 취급을 하는 직원이 있었다.

툭하면 결근하는 게 습관인 사람도 있었다. "어젠 왜 무단결근했습니까?"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그만……." "그럼 적당히 드셨어야죠. 다음부턴 이러지 마세요."

허나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만 더 무단결근하면 소장 직권으로 당신을 해고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해고시킨 직원이 꽤 된다. 강공책이었지만 그로 말미암아 직원들은 이후 소장의 지휘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따랐다.

맥아더 장군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군대의 초병(哨兵)과 마찬가지로 직장(아파트)의 경비원이 무단결근하거나 근무 중 자리를 이탈하는 것은 경계에 실패한 것이다.

작금 한반도를 둘러싼 대단히 엄중한 우리의 처지만을 놓고 봐도 경계(警戒)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욱이 경비원의 무단결근은 그가 출근해야만 비로소 교대를 하고, 겨우 퇴근할 수 있는 동료경비원에게도 민폐를 끼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저런 '어리보기'를 왜 채용하여 고생을 사서 하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홍경석 작가-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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