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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노마지지의 일깨움

장상현/ 인문학 박사, 수필가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9-03-08 16:08
  • 수정 2019-03-08 16:13

노마지지란 늙은 말의 지혜(智慧)라는 뜻이다 이는 韓非子(한비자 : 본명은 韓非)의 설림상편(說林上篇)에 실려 있는 이야기로 오늘날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곧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각자 그 나름대로의 장기나 슬기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것과 오래된 경험은 위기(危機)나 위급(危急)시 반드시 좋은 참고가 됨을 비유하고 있다.

그 고사내용의 요약됨을 들여다보자 춘추시대(春秋時代)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 재위 B.C.685∼643)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B.C.645)과 대부 습붕(隰朋)과 함께 소국인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省)]을 토벌하고자 군사를 일으켰다. 제환공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는 봄이었으나 싸움이 끝나고 귀로(歸路)에 오를 때는 겨울이 되었다. 살을 에는 찬바람과 악천후 밑의 행군은 갈 때와는 달리 고생이 대단했다. 그들은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는 '늙은 말이 본능적 감각으로 길을 찾아낸다. 이른바 노마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 그 말에 따라 짐말(荷馬) 중에서 한 마리의 노마(老馬)를 골라서 풀어주었다. 말은 잠시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는 듯 헤매다 잠시 후 어느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노마는 마침내 제 길을 찾아 병사들은 무사히 행군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또 한번은 험한 산속 길을 행군하다가 전군이 휴대하고 있던 물은 다 마셔버렸는데 가도 가도 샘은커녕 냇가도 나타나지 않았다. 군사들은 목마름에 허덕여 더 이상 한 걸음도 전진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때 이번에는 습붕(柝朋)이 말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 속 여덟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콸콸 물이 용솟음쳐 솟아났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韓非, ?∼B.C.233)는 그의 저서《한비자》 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聖)과 습붕의 지혜(智)로도 모르는 곳에 이르면 그 지혜가 노마나 개미도 스승으로 삼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사기(史記)에 智者千慮一失 愚者千慮一得(지자천려일실 우자천려일득)이라했다.

곧 지혜로운 사람도 많은 생각 가운데에는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많은 생각 가운데 한 가지 쯤은 좋은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요즈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밖에 모른다. 특히 많이 배웠다고 하는 지식인들의 고집은 더한듯하다. 세상은 매우 복잡해졌다, 나 혼자 모든 것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이 나라를(대한민국) 총체적 위기라고들 한다.

지금이라도 과거 경험이 풍부한 원로(元老)분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고집으로 나라를 위기로 몰아갔던 구한말 정치인들의 망령이 되살아나는듯하여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지금의 원로 분들은 일제 침략기를 견뎠고, 6,25 동족상잔을 경험한 분들이다.

그리고 허리 띠 졸라매고 3만 불 시대를 열어준 어른들이시다. 답은 바로 이 어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노마지지인 것이다.

장상현/ 인문학 박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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