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시각에는 상응조치 양보 기대감과 관련해 우리 측 역할에 대한 섭섭함도 섞여 있다. 새삼스럽지만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일깨워준 것은 '한국이 워싱턴의 동맹'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의 기분 나쁜 거부를 우리가 한미동맹이라는 기본 틀 안에 있음을 환기하는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미국과 궤를 같이하면서 중재자의 덕목인 '중립'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했다면 말이다.
더 이상은 우리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중재자로만 남을 수는 없다. 자임하고 자청해서 될 소임도 아니다. 북미 관계는 판까지 깨지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외교력을 발휘해 훈수를 두기 힘들 만큼 심각하고 복잡해졌다. 양국이 엇갈릴수록 '중재자 문재인'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면 어디까지나 우리의 착각이다. 중재자의 한계는 전략을 공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우리 '배역'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또 하나 순진한 발상이 있다. 그것은 북한과 미국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 쉽게 내려오지 못한다는 막연한 낙관론이다. 북미 관계를 복원시킬 당사자는 문 대통령이라는 공식이 무참히 깨진 지금도 물론 우리에게는 아직 활동자, 촉진자, 협상가로서 역할은 남아 있다. 그뿐 아니라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서는 직접 당사자이며 주권국가로서 국면을 주도해야 할 것이다. 조정자, 중재자를 넘어선 최종 결정자(the final arbiter)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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