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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 야만적인 사냥꾼들

입력 2019-03-20 10:10   수정 2019-03-21 10:14
신문게재 2019-03-21 22면

강간
여자는 수다스럽고 남자는 과묵하다는 게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이다. 이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 그렇다는 거다. 쇠털처럼 가벼운 남자들의 입. 아니, 가볍다기보다는 떠벌리는 습성이라고 해야겠다. 여자들과의 성관계 말이다. 남녀간의 성관계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순간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하여간 비밀은 까발려지고 여자는 조롱과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그런데 남자는 능력있는 수컷으로 등극한다. 많은 여자를 '따 먹은' 남자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털북숭이 킹콩이 떡 벌어진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한 여자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행동은 순정이라도 있어 보인다. 허나 인간 수컷은 오로지 동물적 욕망만 들끓는 야수처럼 밤거리를 어슬렁거린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 짓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왜 나올까. 프로이트는 "해부학은 운명이다"라고 했다. 생물학적인 남녀의 차이에서 비롯된 행동양식의 다름을 말함이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정색하겠지만 분명 남녀의 차이는 있다. 아기들도 남자 아이는 자동차 등 거친 것을 좋아하고 여자 아이는 예쁜 인형 등을 좋아한다고 한다. 남자에게 스포츠, 전쟁 그리고 사냥은 강력한 은유다. 선사시대 사냥꾼 신화는 최초의 가부장의 모습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자의 자기정체성을 규정한다. 이것은 권력과 성에 대한 남자들의 갈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사다. 융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동물과 벌인 투쟁은 어떤 원형을 창조할 만한 심오한 사회적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사냥이 성의 생물학도 창조했다는 이유다. 사냥과 살육과 성의 상징적 상호작용. 여자들에겐 공포를 안겨주는 오싹한 남자의 이미지다.



사냥과 살육을 즐기는 남자들의 전쟁에서 여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거친 사냥꾼 남자들의 성적 사냥감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잔인한 법칙' 아래서 여자들은 처참하게 능욕 당한다. 문명화된 현대라고 다르지 않다. 1994년 유고 내전 당시 적군에게 여자들이 집단 강간당해 세계가 경악했었다. 우리의 종군 위안부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보상할 만큼 했으니까 더 이상 사과는 안해도 되고 이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일본.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우리에겐 수치의 역사다. 올해 아흔살인 나의 엄마는 열여섯에 결혼했다. 결혼 안 한 처녀들은 위안부로 끌려간다고 해서 외할아버지가 서둘러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조선의 꽃다운 처녀들은 어느날 갑자기 중국으로, 버마로, 남태평양으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목숨을 부지하며 치욕을 견뎠다. 군국주의 일본은 혈기왕성한 젊은 군인들의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욕정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위안부가 필요했던 것이다.

"온라인 다 같이 만나서 스트립바 가서 차에서 강간하자", "ㅋㅋㅋㅋ", "그건 현실에서도 하잖아", "그러네", "우리 이거 영화야… 살인만 안했지, 구속감 ××많아". 정준영과 그 무리들이 카톡방에서 나눈 대화다. 선사시대의 대평원에서 매머드를 쫓던 사냥꾼은 도대체 어디까지 '진화'할까. 원초적 남성성에 집착하는 남자들은 식탁위에 놓인 물건(여자)을 맘껏 갖고 놀고 요리하며 자신들의 야성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보인다. 여자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강간하고 동영상 찍어 공유하고…. 온갖 저열한 말들을 쏟아내며 낄낄거리는 추악한 수컷들. "인간이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가. 진리를 간직한 자이면서도, 오류의 시궁창과 같고, 우주의 영광이면서도 우주의 쓰레기와 같다." 파스칼의 말이다. 여기서 '인간'을 '남자'로 대입해도 될 것 같다.<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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