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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악마의 자비

입력 2019-03-21 10:14   수정 2019-03-21 17:47
신문게재 2019-03-22 22면

#1. 배고픔은 물론이고 살아남는 것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가난한 마을, 악마가 나타나 가난한 농부의 아이를 데려간다. 몇 년을 통곡하던 농부는 마침내 아이를 되찾기 위해 돌산 위 악마의 요새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농부가 본 것은 낙원이었다. 굶주림도 고통도 없는 곳에서, 아이는 자신이 키울 때와 달리 천진난만한 얼굴로 풍요롭게 살고 있었다.

악마는 농부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아이를 다시 데려가서 가난과 질병 속에 살게 할 건지, 지금 이대로 행복하게 살게 할 건지. "잔인해." 농부는 선택할 수 없는 괴로움에 절규하며 악마를 원망한다. "네가 나처럼 오래 살았다면, 잔인함과 자비심은 똑같은 색상의 음영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 악마는 농부에게 묘약을 건넨다. 악마의 요새에서 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묘약. 악마가 건네는 자비였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그리고 산이 울렸다'에 담긴 아프가니스탄 전설은 인간과 망각에 대해 슬픈 공감을 하게 한다.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괴로움. 망각은 인간의 고통을 지워준다. "화상 입었을 때의 고통이 계속 느껴진다고 상상해봐라." 고등학교 시절 생물선생님은 인간에게 망각이 없다면 끔찍할 거라고 하셨다. 갓 데이고 베인 상처의 고통이 영원하다면 살 수 있을까. 망각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부를 만도 한다.

#2. 악마가 건네는 자비든 신이 주는 선물이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기억하고 싶은 일을 시간이 감에 따라 잊어버리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기억과 망각을 주제로 삼는 소설이나 영화 작품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망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괴로운 기억을 지울 것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사랑했던 연인인 두 주인공은 헤어지고 나서 수술로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이별의 아픔은 사랑했던 순간을 잊고 싶게 했다. 그러나 망각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연히 재회한 두 주인공에게 기억이 돌아오고 다시 인연이 시작된다.

잊고 싶은 일 중에는 잘못했던 일, 수치스러운 일도 있다. 그런 기억은 타인의 머릿속에서도 사라지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사이코패스나 살인마는 다를 수 있겠지만 도박이나 몰카, 성추행, 음주운전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의 죄를 잊어주길 바란다. 그들에게 벌은 늘 자기가 저지른 죄보다 무겁다. 충분히 죗값을 치렀으니 모든 것이 지난 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죗값은 스스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죄에 대한 망각도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다.

#3. 지금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버닝썬과 성관계 동영상 유포 사건 관련자들은 어떨까. 인생에서 2019년 3월을 통째로 잊고 싶을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처럼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거라고, 언젠간 모든 걸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대중은 정말 어느 날 지금의 사건을 잊을까. 망각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쩌면 먼 훗날엔 2019년 3월의 일들이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기억해야 한다. 피해자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돌려보며 낄낄거려서는 안 된다는 걸, TV에 출연한 연예인이 옛 잘못을 흑역사라며 희화하고 그 모습을 예능감으로 포장하는 기사가 나오는 게 더 웃기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연예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은 거대한 그림자가 모든 일이 희미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도. 망각은 악마나 베푸는 자비다. 알아서 조용해지는 건 개돼지나 하는 짓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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