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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5일장

임효인 행정과학부 기자

입력 2019-04-17 11:07   수정 2019-04-17 17:57
신문게재 2019-04-18 22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집 옆에 5일장이 서는 게 좋아, 싫어?" 엄마는 아주 잠깐 생각하더니 "장 서는 날 복잡하긴 해도 가까이 있으니까 필요한 거 바로 살 수 있고 예전부터 있었던 거니까"라고 했다. 불편한 것도 있지만 지금이 좋다는 거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병천 5일장이 서는 곳과 가깝다. 할아버지는 포목점을 운영해 아빠를 비롯한 아들 일곱을 키우셨다. 가게이자 집이었던 그곳에서 평생을 사셨고 지금은 내 가족이 살고 있다.

장이 서는 1일과 6일엔 집을 나서면 바로 시장이 보인다. 생선 파는 아줌마와 아저씨, 반찬 아줌마, 이불 아줌마, 속옷 아줌마 등 오래 보며 익숙한 얼굴을 마주한다. 머리방울을 팔던 젊은 아저씨도 떠오른다. 10대의 나는 장날이면 시장에서 찹쌀순대와 돼지껍데기를 사 먹었다. 대학생 땐 양말 쇼핑을 했는데 쇼핑몰에서 한 켤레 6000원은 줘야 살 수 있는 앙고라 양말을 시장에선 2500원에 샀다.

더 어릴 땐 긴 어묵 하나를 나무젓가락에 꽂아 질겅질겅 씹으며 엄마 아빠 손 붙잡고 시장에 갔다. 시간이 흘러 엄마 심부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선 이것저것 사다 놓으라던 엄마의 명령을 수행했다. 단골가게 중 한 곳이었던 방앗간은 장날에만 두부를 만들었다. 그 두부는 참 크고 따뜻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튀김 어묵과 칼국수도 장바구니에 자주 넣었다. 돈을 벌고 나서는 엄마에게 선물할 수면잠옷을 사기도 했다.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녹아 있는 곳이다. 비록 아침 일찍 전화해 길가에 대 놓은 차를 옮겨달라는 전화에 달콤한 주말 아침 강제기상을 하기도 하지만 그정도 번거로움쯤이야 기꺼이 감내할 마음이 있다. 오래전엔 시장이 서는 날이면 장터가 지저분했다. 최근엔 파장 이후가 평소보다 더 말끔하다. 전국 5일장을 도는 시장 상인들이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해 여름 아주 더웠던 어느 저녁이었다. 마감을 마치고 부랴부랴 유성시장으로 달려갔다. 전국 장터를 찾아다니고 그곳의 풍경과 만난 사람들을 기록한 이수길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녹색연합 인문학 모임이 있던 날인데 그날 이 선생님과 유성시장을 돌아봤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이 선생님은 특유의 웃음과 친화력으로 장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막걸리와 모둠전을 실컷 먹으며 장터 얘기를 듣고 두 번 더 자리를 옮길 만큼 장터 문화에 대해 할 얘기가 많았다.

이 선생님은 전국 장터를 돌고 쓴 '어무이, 비 오는 날은 나가지 마이소' 머릿말에 "대한민국 5일 장터 사람들 취재 대장정은 우리네 부모님이 헤쳐오신 위대한 삶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과정이었다"고 적었다. 내겐 과거 추억이 녹아 있는 그곳이 누군가에겐 삶의 역사라는 생각에 짐짓 위대함이 느껴진다. 사라져가는 5일장 문화가 더 오래 보존돼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임효인 행정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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