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 트위터
  • 페이스북
  • 검색
  • 전체메뉴

실시간뉴스

닫기
  • 본문 왼족버튼
  • 센터
  • 본문 오른쪽버튼

[편집국에서] 30년 지기의 귀농

입력 2019-04-17 17:06   수정 2019-04-18 10:05
신문게재 2019-04-19 22면

30년지기 대학 바둑동아리 친구가 안동으로 귀농을 한다. 학창시절과 군 생활을 빼고는 서울에서만 40여년을 살아온 이른바 뼛속까지 도시민이 안동시에서도 차량으로 20여분은 더 소요되는 두메산골서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한다. 친구 설명에 따르면 산골마을은 4~6가구에 노인들만 거주하는 곳으로 본인이 정착하면 새파랗게 젊은 막내가 된다고 한다. 농토 구입 등 사전 조사차 방문했을 때도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넘어 귀염을 받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언제부터인가 귀농이라는 말에서는 힐링이나 낭만이라는 의미가 오버랩 된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촉발됐지만 언론의 영향도 큰 부분을 차지한 것 같다.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를 내세운 tv프로그램 '삼시세끼'가 우선 떠오른다. 훈남으로 세련된 도시민 이미지의 이서진과 아이돌 출신 옥택연이 시골에서 하루 세끼 밥만 해먹는 단순한 구도였음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화면에 투영된 이들의 농촌생활은 회색빛 콘크리트의 도시와는 상반된 재미, 상쾌함, 여유 등이 넘쳐흘렀다. 한마디로 목가적이고 낭만적이었다. 또 귀농에서 한 걸음 더 나가 깊은 산속에서 홀로 유유자적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도 시골생활에 대한 아련한 갈망을 더했다.

하지만 귀농, 즉 농사꾼이 되는 것은 현실이다. 삶의 행태가 완전히 바뀌는 점에서 이민이라고도 일컬어 질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농촌 출신인 필자가 어려서부터 듣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농사는 '쉼 없는 노동의 연속'이라는 사실이다.

농사꾼이던 부모님은 이른 새벽 어스름할 때 농토로 나가 황혼이 돼야 귀가 하시고 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힘든 농사일 하지 말고 도시에 나가 편안하게 살아라."는 말씀을 기회마다 하셨다.

이렇듯 어려운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관련 전문가들은 농기센터 등 관련 기관이나 선배 귀농인 들의 도움을 받을 것을 조언한다. 가족동의도 꼭 받을 것도 권유한다. 특히 농사도 작목별 재배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전에 교육을 받거나 영농체험을 할 것을 당부한다.

'살 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학창시절 배웠던 고려가요 '청산별곡'이다. 시구의 의미는 자연에 살고 9싶다는 의미다. 하지만 속뜻은 당시 거란, 몽고 등의 끊없는 외환과 무신난 등 내환에 시달린 백성들이 세상에 대한 혐오나, 고달픔 때문에 삶의 도피 또는 피난처로 자연에 살고 싶다고 한 것이다.

친구를 포함한 귀농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청산별곡처럼 귀농이 현실에 대한 도피나, 외면이 아니길 기원한다.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