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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노트르담의 기억

이성만 배재대 교수

입력 2019-04-22 10:10   수정 2019-04-22 13:32
신문게재 2019-04-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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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만 배재대 교수
'Notre-Dame de Paris'는 '파리의 귀부인(성모 마리아)'로 번역된다. 고딕 성당의 어머니이자 세계적 기념물이다. 그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수작업 중 화재로 지붕과 첨탑이 내려앉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도시 중심부의 시테 섬에 있다. 이 조그만 섬은 수도의 상습 정체 구역이기도 하다. 파리의 모든 도로는 노트르담 앞 광장의 영점에서 시작된다. 이런 노트르담의 위치를 쉴리 주교는 우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로마시대에 이곳 '루테티아'에는 로마의 신전이 있었다. 주교는 바로 이곳에 기독교 상징물을 세우게 하여 의식적으로 공간을 탈바꿈시킨 것이다. 건축에는 200년 이상이나 걸렸다. 성가대석은 1182년에, 중랑과 서쪽 파사드는 1225년에 완성되었다. 바로 이곳에 그 유명한 장미창과 쌍탑이 있다.

백년전쟁 중인 1431년 영국과 친영파 프랑스 성직자들이 벌인 종교재판으로 화형당한 잔 다르크 성녀의 성상도 이 성당 안에 있다. 프랑스 혁명 때는 귀족문화와 종교문화에 배타적이던 시민들에 의해 훼손되고 성당내부가 외양간으로 바뀌는 수모도 겪었다. 그런가 하면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황제 대관식을 올렸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1831년)에서 15세기 파리의 생생한 모습을 그리면서 노트르담을 그 중심에 두었다. 위고는 모습은 흉측하지만 마음씨가 그만인 종지기 콰지모도와 지배계층의 부패와 민중들의 군중심리로 희생된 집시 에스메랄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며 위기의 교회 상황을 꼬집었다. 작년 850주년 기념일에는 위고의 소설에서 콰지모도가 울린 종들이 종탑에서 제거되었다. 또한 날씨와 대기 오염으로 부식된 부벽 아치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공개되면서 1억 유로의 보수 공사비가 책정되기도 했다.

이렇듯 역사의 회오리를 오롯이 간직한 유럽의 심장 노트르담이 보수공사 중 화재로 처참한 몰골을 드러냈다. 그 건물 재건에 세계의 통 큰 부자들이 수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한다. 질문이 생긴다. 수단 사람들이 동시에 기아로 죽어가는 동안 왜 죽은 돌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일까. 아니면 난민 캠프의 아이들이 최소한의 기본 교육을 받을 기회가 되는 기금은 왜 없을까. 더구나 기독교 교회라면 그 초점은 이웃에 대한 자선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자들이 자기네 부를 가난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바람직하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부도 헌신적이어야 하고, 모든 억만장자들도 예수의 비유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가 10:25). 그러나 돌뿐만 아니라 수세기 동안 국가와 문화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기에 특히 중요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있다는 사실도 틀린 말은 아니다. 노트르담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런 문화재 중 하나다.

사회는 어떤 문화권에서든 자신의 역사를 확신시켜줄 상징이 필요하다. 그 상징의 출처는 지도상의 한 지점 이상이다.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이러한 문화공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불확실성은 배제와 증오의 온상이다.

노트르담도 훌륭한 상징이다.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이 이 역사적인 공간을 찾은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프랑스 수도의 심장에 위치한 이 특별한 성당의 아름다움, 존엄성, 역사적인 중요성에 감동을 받았다. 화재가 있기 이전에 전 세계에서 성당을 찾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수많은 사진들이 이런 매력을 증언한다.



유럽은 국경을 초월한 통화 이상이자 경제권 그 이상이다. 유럽은 하나의 문화권이고 노트르담은 이 문화권의 주요 상징 중 하나다. 그러니 부자들이 재빠르게 그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행위는 옳고도 적절한 것이 아닐까. 성당의 재건도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렇다. 역사는 시간의 증인이고, 진리의 빛이고, 기억의 생명이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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