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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선배에게 뺨맞고 후배에게 화풀이

입력 2019-04-24 01:07   수정 2019-04-24 17:10
신문게재 2019-04-25 22면

김유진
"부조정실 들어가겠습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교내 방송국 수습국원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일명 '수습 책상' 외에는 방송국의 어떤 의자나 소파에도 앉을 수 없었고, 휴대전화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방송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부조정실에 들어가려고 해도 국장과 선배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방송국 전화를 받을 때도 "안녕하십니까, 00대학교 방송국 00기 수습국원 00학과 1학년 김유진입니다"라는 관등성명을 반드시 대야 했었고, 선배들의 불시점검 전화에 "00대학교 방송국입니다"라고 대답했다가 불벼락을 맞은 동기도 있었다.

"요즘 1학년들은 인사 안 하더라"

대학생 시절 학기 초만 되면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야기였다. '1학년들의 인사'라는 이슈는 기자가 새내기였을 때 우리 학번을 향했고, 해가 지나면 대물림하듯 그해의 신입생들을 향해 잣대가 겨누어졌다. 집합하거나 얼차려를 하는 등의 군기가 있는 학과는 아니었지만,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선배들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부단히 애를 썼던 기억이 났다. '너흰 선배들을 몰라도 선배들은 너희를 알아. 모르면 무조건 인사해'라는 말에 건물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인사를 하기도 했었다.

기자가 겪었던 것들은 자그마치 7년 전 일이다.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대학을 다니는 이 시대에도 일부 지역대학에서는 여전히 선배들이 후배들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수긍하기 어려웠던 군기 문화가 아직 대학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학생이 같은 학생을 상대로, 그것도 많아 봐야 네다섯 살 많다는 이유로 집합을 시키거나 얼차려를 주고 지켜야 할 규칙을 목록으로 적어 강제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대학은 지성의 요람이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신성한 배움의 장소에서 '예술계는 원래 군기가 세다'는 것을 방패 삼아 괴롭힘을 자행해서는 안 된다. 일말의 상식이 있다면 이런 부조리함을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는 식의 갑질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먼저 환경을 접하고 학문을 배운 입장에서 후발 선수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는 있다. 그렇지만 대학을 다니는 지성인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후배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안내판인지, 그저 화풀이에 불과한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선배다움'은 후배들에게 부조리한 군기 문화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당함에 앞장서서 싸우고 개선해 주는 것이다.



해당 대학은 군기 문화가 폭로된 학과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라 실제로 갑질을 일삼은 사례가 적발되면 학칙과 규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섣불리 목소리 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용기 있게 내부고발을 했던 움직임들이 헛되지 않도록 조사 과정부터 처벌까지 철저하게 해야 한다.
김유진 교육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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