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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단심(丹心)과 대나무 정신

윤여환 충남대 회화과 교수

입력 2019-05-06 10:31   수정 2019-05-06 10:39
신문게재 2019-05-07 22면

윤여환 충남대 교수
윤여환 충남대 회화과 교수
2010년 박팽년 국가표준영정(제81호)을 제작하면서 자료조사 차, 박팽년선생이 살던 집터(대전시 동구·가양동)에 세운 유허비(遺墟碑)를 찾았다. 1668년 유림들이 그의 유허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박팽년의 유허에 주춧돌을 모아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그런데 그 비석에서 지금도 검붉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단심(丹心)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 성삼문도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청청 하리라'고 하여 단심가로 절조를 표현했다.

붉은 마음, 그 단심이 시가 아닌 대나무로 표출된 사례도 있다. 대나무는 왜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가. 대나무의 줄기는 곧게 뻗고 마디는 뚜렷하다. 마디사이는 속이 비어 통을 이루고 마디는 막혀 강직함을 유지한다. 줄기는 세로로 쪼개지며 잎은 사시에 푸르러 선비의 지조와 부녀자의 절개에 비유되었다. 대쪽같은 사람이란 불의와 일체 타협치 않는 지조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죽취일(竹醉日)은 음력 5월 13일인데 평소에는 대나무의 성질이 너무 곧아 옮겨심으면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만은 대나무도 취해 옮겨도 뿌리를 잘 내린다고 한다. 혼인의 초례상에 송죽을 꽂고 청실홍실을 걸어 연결하는 것은 신랑신부의 절개를 다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단심과 절의의 상징인 혈죽(血竹)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왕조가 멸망했을 당시, 마지막 충신이라 일컬어졌던 정몽주(鄭夢周)의 선죽교 사건에서도 나온다. 이방원이 공양왕을 폐위하고 조정을 장악하기 위해 그에게 '하여가(何如歌)'를 통해 정몽주에게 지지 세력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를 통해 거절하였다. 그로 인해 정몽주가 이방원 일파에 의해 선죽교에서 철퇴에 맞아 피살당했다. 그곳은 원래 선지교(善地橋)라 불렸는데 그 혈흔이 떨어진 다리틈새에서 대나무가 자라났다고 하여 선죽교(善竹橋)라 고쳐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민영환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왕조의 몰락에 책임지고 자결로 속죄하였다. 그런데 이듬해 7월, 자결당시 그의 피묻은 옷과 칼을 봉안한 뒷방에서 대나무 가지가 마루바닥 틈으로 솟구쳐 올라온 것이 발견되었는데 가족들이 대나무를 처음 발견했을 때, 대나무는 4줄기에 가지는 9가지, 45개의 잎사귀가 돋아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대나무는 '충신의 혈죽'이라 불리기 시작했고, 대나무의 잎사귀가 충정공이 죽을 당시 나이인 45에 맞춰 자라났으므로 충정공의 혼이 붙은 것이라고 소문이 났다. 또한 그해 7월17일 대한매일신보에 대서특필된 이후 경향 각지에서 인파가 밀려들어오면서 유명해졌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은 '혈죽기(血竹記)'를 남겼으며 각종 문인 학도들이 시를 짓고 노래를 지어 충절을 되새겼다고 전해진다.

그의 죽음은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운동과 구국계몽 운동이 발흥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렇게 민영환의 혈죽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일제는 의도적으로 근거없는 헛소문이라 일축하면서 조사라는 명목하에 집안에 들어가 대나무를 조사, 아예 뿌리채 뽑아버렸다. 이에 민영환의 일가에서 이 혈죽을 광목천에 싸서 몰래 보관하다가 1962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해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당시 일본인 사진사가 찍은 혈죽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대나무는 마디 있음을 귀히 여긴다(竹貴有節)는 말이 있다. 가늘고 속이 빈 대나무가 하늘 높이 솟는 까닭은 중간중간에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마디 있음을 귀히 여겨야 하는 것은 대나무만이 아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마디마디가 힘들때 잡아주는 성장동력의 큰 역할을 한다. 속이 빈 대나무의 마디는 곧 대나무 정신이다. 단심과 대나무 정신이 요구되는 시대는 새로운 역사의 태동을 예견케 한다. 윤여환 충남대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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