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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여자] 김언희의 '빨래'

입력 2019-05-15 10:33   수정 2019-05-1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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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제공
부저가 울리면

뚜껑을 열고

가족들을 끄집어낸다

분당 칠백 회전

와류식 세탁조 속에서

얼마나 서로를 붙들고 늘어졌던지 식구들은

근친상간의

사람똬리를 틀고

팔다리가 엉겨 떨어지지도 않는다

표준탈수

침도 땀도 흘리지 않는 식구들을

빨랫줄에 널어 걸치며 단단히

일러준다 줄 밖은

낭떠러지야

쓸개나 허파야 뒤집혔건 말건

여벌의 팔다리 있는 전부로 턱을

걸어, 바람을 핑계삼아

늘어진 넓적다리로

친친 휘감아도 버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허공을

팔다리를 흔들어가며

걸어야 한단 말야

하루 종일





내가 살던 고향 시골은 흔한 말로 깡촌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먼 길을 걸어서 통학했다. 체구도 작은 나는 꽤나 힘들었다. 학교 가는 길이 왜그렇게 먼 지. 버스는 구경도 못했다. 면소재지로 나가야 구경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자주 다니지 않았다. 그러니 공기가 얼마나 맑을 것인가. 볕 좋은 봄, 엄마는 큰 대야에 빨래를 담아 집 앞 개울에서 신나게 빤다. 수정같은 개울물에 더러운 옷들이 깨끗해지는 게 난 신기했다. 그것들을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넌다. 아버지 바지, 양말, 난닝구, 엄마 몸빼 바지, 수건 그리고 어린 우리 옷들이 알록 달록 색깔을 뽐내며 공중에서 펄럭인다. 긴 작대기로 빨랫줄을 받쳐 높이 쳐들면 빨래들은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세상을 품에 안는다.

시가 세기로 유명한 김언희의 시 '빨래'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가족은 버릴 수 없는 것. 끈끈한 피로 맺어진 사람과의 애증은 질기다. 도망가고 싶어도 결국 되돌아 오게 만드는 고통스런 관계다. '팔다리가 엉겨 떨어지지도 않는다'. 빨래를 통해 가족 관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김언희의 시적 발랄함이 재밌다. 내가 사랑하는 시인 김언희.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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