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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멘델스존과 아베 마리아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입력 2019-06-04 08:30   수정 2019-06-04 08:44

오지희 음악평론가
오지희(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장미꽃이 가득한 계절이 왔다. 바라만 봐도 기쁨과 행복을 주는 장미의 아름다움과 기품있는 성격은 클래식음악 가운데 특정 장르를 연상시킨다. 바로 마리아 찬미가인 아베 마리아(Ave Maria)이다. 아베 마리아는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출발한 서양 종교음악 장르에서 오랜 시간 면면히 이어오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노래다.

아베 마리아는 대개 짧고 간결하다. 하지만 품위 있고 진정성을 지닌 표현력있는 울림으로 종교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탁월한 음악을 만들고 싶은 작곡가들의 마음 한쪽 켠에도 자리잡고 있다. 르네상스 천재 조스캥 데 프레의 걸작 아베 마리아로부터 바흐 프렐루드 1번에 가사를 붙인 구노의 아베 마리아, 카치니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러시아 작곡가 바빌로프가 만든 유려하게 흐르는 아베 마리아, 슈베르트의 서정적인 아베 마리아 등 많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감동을 주는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멘델스존의 아베 마리아는 작곡가의 첫 번째 종교음악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감흥이 있다. 멘델스존의 어떤 면이 아베 마리아 작곡을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 걸까.

우리에게 멘델스존의 아베 마리아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작품의 뛰어난 완성도에 작곡가 개인의 인종과 종교적 정체성이 더해져 큰 울림을 준다. 독일인이자 유대인 펠릭스 멘델스존(1809~47)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유대인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 특별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멘델스존이 낭만주의 시기 가장 유력한 독일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과 탁월한 음악교육,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지성과 재력을 지닌 명문가 후손이라는 배경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할아버지인 모제스 멘델스존(1729~86)이 터를 닦아놓은 종교적 관용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손자 펠릭스 멘델스존이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라는 이름을 가진 펠릭스의 조부는 18세기 저명한 독일 유대인 계몽철학자이다. 그는 종교에 대한 관용과 신앙의 자유를 주장했고 그의 계몽철학은 독일 지식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모제스의 아들인 아브라함은 자식들에게 기독교 세례를 주었고 후에 본인도 개종했다. 아브라함은 멘델스존이란 이름이 상징하는 유대적 정체성이 아들의 활동에 방해가 될까 염려해 바르톨디(Bartholdy)라는 성을 사용하길 권장했지만, 펠릭스는 멘델스존이라는 정체성을 고수해 두 개의 성을 같이 사용했다. 현재는 멘델스존으로 총칭한다. 또한 뛰어난 번역가이자 계몽주의 운동가였던 고모 브렌델 멘델스존(1764~1839)은 독일 문학비평가 슐레겔과 재혼하면서 이름을 도로테아 폰 슐레겔로 바꾸고 훗날 남편과 함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와 같이 명망있는 유대 가문인 멘델스존 집안이 개신교와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한 것은 당시 베를린 유대인 사회에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한편 이들과 멀어지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의 확고한 신념을 지닌 멘델스존은 독일사회에 적극적으로 동화됐고 영향력있는 독일 작곡가, 지휘자, 음악감독으로 살았다. 낭만주의 시기 고전적 작곡가로 불린 멘델스존이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은 르네상스 다성음악,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음악과 같은 클래식 음악 전통의 본질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종교의 관용과 신앙의 자유가 주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멘델스존이 자신의 첫 종교음악 작품으로 가톨릭의 아베 마리아를 선택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의 아베 마리아는 과거의 전통에 충실하며 독창과 합창이 탁월한 균형감각을 지니고 세련됨과 기품을 담아 충만하게 흐른다. 참으로 멋진 멘델스존의 아베 마리아이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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