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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당신이 먹는 게국지는 그 게국지가 아녀

입력 2019-06-05 10:00   수정 2019-06-05 10:28
신문게재 2019-06-06 14면

게국지
내가 일하는 미디어부엔 고향이 서산인 동료가 있다. 전산 담당인데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눈코입이 손톱으로 콕 찍은 것처럼 작고 귀여워 겨울엔 찐빵 같고 이때 쯤엔 하지 감자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 친구가 보기 드문 효자다. 철마다 부인과 휴가내서 가을 추수, 김장, 좀 있으면 감자 수확하러 고향에 간단다. 요즘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서 이 친구도 덕담 좀 들었다. 성이 봉씨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마디 했다. "와, 요즘 봉씨 전성기네. 봉준호, 봉만대 그리고 우리 봉차장." 나도 고향이 시골이고 봉차장도 서해 바닷가여서 점심 먹을 때 종종 고향 얘기를 나눈다. 어느 날은 게국지에 대해 물어봤다. 게국지는 서산태안의 토속 음식으로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봉차장은 요즘 식당에서 나오는 게국지는 옛날 집에서 먹은 그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봉차장에 의하면 식당에서 파는 게국지는 한마디로 본질을 한참 벗어난 짝퉁인 셈이다. 배추 겉절이에 꽃게를 넣어 끓인 걸 게국지라고 한다며 어이없어 했다. 봉차장은 할머니가 해준 게국지를 이젠 먹을 수 없다고 아쉬워한다. 도대체 게국지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먹을 게 귀하던 옛날 바닷가에선 박하지를 비롯해 잘디 잔 게들, 칠게와 능쟁이로 게장을 담갔다고 한다. 김장철에 그 게장에 배추 겉 잎사귀와 호박을 넣고 버무려 겨우내 삭혀 끓여먹는 게 게국지라고 한다. 이를테면 게국지는 배고픈 시절 어촌에서 먹던 향수어린 서민 음식이다.



진짜배기 게국지를 먹고싶은 열망이 끓어올랐다. 일단 서산시청 문화담당 부서에 전화를 했다. 난 담당자에게 간절함을 담아 옛날 방식으로 만든 게국지를 먹어보고 싶다며 주절주절 이러쿵저러쿵 장황하게 설명했다. "시청 앞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어요. 30년 된 식당이에요." 공무원이 알려준 식당은 후미진 골목에 납작하게 들어 앉았다. 오래되고 소박해서 정감이 갔다. 관청에서 알려준 곳이라 숨은 맛집은 아니겠다 싶어 점심 시간을 피해 1시 넘어서 들어갔다. 다행히 손님들이 없었다. 부엌에선 설거지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드디어 게국지가 나왔다. 국물이 맵진 않은데 짭조름했다. 주인장에게 옛날 게국지를 먹고 산 서산이 고향인 지인이 있다고 얘기했다. 주인은 지금은 게가 비싸 예전 게국지처럼 똑같이 못 담근다며 게장 대신 액젓을 넣는다고 했다.

게국지와 나란히 나온 찌개도 특이했다. 두툼하게 깍둑 썬 무를 넣었는데 그것 역시 짜디 짰다. 게국지 국물 맛이 나는 걸로 봐서 액젓으로 간을 한 모양이었다. 주인한테 이건 뭐냐고 물었다. "무 찌개유." 바닷가 요리라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짜지만 감칠맛이 있었다. 게국지도 그렇고 무 찌개도 그렇고 이것저것 들어간 것 없이 단순하고 소박했다. 음식 맛이 복잡하지 않고 깔끔했다. 고춧가루도 절구에 빻은 것처럼 입자가 거칠고 넣는 시늉만 했다. 설거지를 끝낸 아주머니들과 주인 아저씨가 내 옆 테이블에서 바지락 넣은 국수를 먹었다. 밥을 먹다 고개를 빼고 쳐다보자 한 아주머니가 "국수 줄까유?" 하길래 두말 않고 한 대접 얻어 후루룩 마셨다.

인류 역사에서 맛만큼 다양하고 고집스러운 건 없다. 사람은 어릴 적 기억을 맛으로 소환한다. 우리집 특제요리는 엄마의 간장게장이었다. 지금은 엄마가 연로하고 건강이 예전만 못해 간장게장을 먹은 지 꽤 됐다. 민물게나 박하지로 담근 엄마의 짭조름한 간장게장. 한번은 엄마가 꽃게로 담갔는데 비린내가 심해서 버렸다. 오직 박하지만이 낼 수 있는 간장게장의 풍미를 꽃게는 감히 흉내낼 수 없었다. 이제 나의 엄마와 바닷가 갯마을 아낙들의 투박한 손맛이 사라져 간다. 혀 끝에 남아 있는 오래된 입맛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다. 흘러간 사랑처럼 가슴이 아릿해진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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