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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스케치] 통일의 성지, 베를린에 가다

입력 2019-06-20 09:47   수정 2019-06-23 13:50

  

연합 ㄴㄴ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MDL(군사분계선)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남북 정상이 MDL에서 만난 것도,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땅을 밟는 것도 사상 최초였다. 연합DB 

 

 

2018427.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지 1년이 훌쩍 넘었다. 미사일 도발 등 일촉즉발 대치 속 대화단절 11년 만에 성사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극적 만남, 우리 국민 모두를 전율케 했고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지구촌 마지막 분단국가에도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다. 하지만 하늘은 한반도의 봄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금새 열릴 것만 같았던 평화의 길은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29년전 그 어려운 길을 먼저 헤쳐나간 독일. 그 통일의 역사와 발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베를린을 돌아보며 한반도의 평화가 좀 더 가까워지를 기원해 본다.

 

전승기념탑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전승기념탑. 황미란 기자

 

 베를린 입성을 알리듯 우뚝 서 있는 전승기념탑  

 

도시 중심가에 들어서자마자 높이 67m의 전승기념탑이 기세 좋게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프로이센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운 이 탑은 1864년부터 10년에 걸쳐 건축됐다. 본래 독일 제국의회 의사당 앞 광장에 세워졌지만 베를린을 세계 수도로 만들려는 히틀러의 게르마니아 계획에 의해 193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탑 꼭대기서 황금빛 자태를 뽐내는 승리의 여신상’, 천사의 날개를 달고 베를린 도심을 내려다 보는 모습이 뜨거운 태양을 품어 더 눈부시다.

 

탑을 세운 목적답게 곳곳에 전승을 기념하는 장식품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4면의 기단에는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전쟁 승리와 1938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함락을 기념하는 조각이 장식돼 있다. 또 대포를 형상화 한 탑신과 그 옆에는 대포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는데, 실제 전쟁에서 노획한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곳곳에는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생긴 크고 작은 총격과 포탄의 상흔도 남아있는 이 탑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탑은 도로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가까이 가려면 지하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탑 내부에는 정상의 전망대에 오를 수 있는 285개의 나선형 계단이 있고, 전망대에 올라서면 개선문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별도의 입장료가 있다.

 

개선문2
베를린 장벽과 함꼐 동서 냉전의 상징이자, 통일의 이정표인 브란덴부르크 문. 황미란 기자

 

 

영욕의 역사가 함축된 브란덴부르크 문 

전승기념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 문, 1791년 독일이라는 나라의 기틀을 세운 프로이센 제국이 그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으로 높이는 26m, 가로 길이는 65.5m 규모다. 탑 꼭대기에는 네 마리의 말이 승리의 여신이 탄 마차를 끄는 형상인 승리의 콰드리가라는 조각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은 독일을 침공한 나폴레옹에 의해 약탈 당했지만 또 한번의 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하며 돌려받았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 장벽과 함께 동서 냉전의 상징이자, 통일 독일의 이정표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동·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던 이 문은 28년 후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198911, 10만 여명의 독일 국민이 이 문 앞에 모인 가운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부란덴부르크 문, 현재 독일에서 주조하는 50센트 유로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유대인2
축구장 3개 크기의 광장에 조성된 홀로코스트 기념비공원, 2711개의 추모비가 마치 설치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황미란 기자

 

 2711개의 묘비유대인학살추모공원을 돌아보며 

 

베를린 도심 노른자땅 위에 세워진 2711개의 묘비, 마치 설치예술 작품 같다.

홀로코스트 기념비공원으로도 알려진 이 추모공원은 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인 2005년 공식 개장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으로 당초 독일 정부는 이 땅에 호텔을 지을지, 은행, 테마파크를 지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이익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쟁 피해자들을 기리는 것을 선택했다.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분노하게 하는 그 어느 나라와는 참 다르다.

 

축구장 3개 크기의 광장을 가득 채운 직육면체 콘크리트 묘비들의 집합체, 커다란 관을 연상시킨다. 추모비는 구릉을 따라 체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는데, 그 높이는 20cm부터 4m70cm까지 다양하다.   왜 하필 2711개일까? 묘비 숫자에 대해 희생자의 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이 숫자에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삼삼오오 사진 찍는 관광객들, 공원 한 켠에서 재잘대는 아이들, 묘비를 쉼터 삼은 이름 모를 새 한마리.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풍경을 즐기며 공원 한가운데 들어서자 성인키를 훌쩍 넘는 묘비 숲과 마주한다. 그 분위기에 압도된 탓일까?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도 그럴것이 공원을 설계한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은 당시 수용소에 갇히거나 가스실에서 고통스럽게 죽어야만 했던 유대인들의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심정을 조형물에 담아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통했다.

 

당시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은 유럽 전체 유대인 900만명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600만명. 추모공원 지하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개인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  

   

 
장벽 전경
베를린장병에 설치된 안내문.

 

베를린장벽 앞
베를린장벽 아래로 전시공간이 마련돼 있다. 황미란 기자
 
베를닌장벽 구멍
베를린장벽 붕괴당시 생긴 구멍사이로 벽 건너편 도로가 보인다. 황미란 기자

 

 베를린장벽, 그리고 남과 북을 가른 철책선 

 

베를린을 두 쪽으로 갈라놨던 42.1콘크리트벽.

베를린장벽은 1961년 동독 정부가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사람과 동독 마르크의 유출을 막을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당시 동독 정부는 이 벽을 반파시즘 방어벽이라고 이름 붙였고 서독 정부는 수치의 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5000여명이 이 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고 그 중 100~200명 가량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부터 바로이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1989119, 당시 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동독인들의 해외여행 절차를 간소화하는 행정 조치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주변국 외에 동·서독 국경을 통한 출국도 가능케 한다는 내용으로 확산되는 시위를 무마하려는 의도였고, 이전의 정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휴가로 인해 새 정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황했다.

마침 한 이탈리아 기자가 정책이 언제부터 유효한지 물었다. 귄터 샤보브스키는 들고 간 문서를 정신없이 뒤적이며 아무 생각 없이 답변했다. “지금부터 바로!”라고.

그의 답변에 기자들은 발표 내용이 국경 개방을 뜻하며, 그것도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이 소식을 들은 동독 시민들은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국경검문소로 쏟아져 나왔다. 공산당 정치국은 이때까지 국경 개방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태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시민들은 해머와 곡괭이를 들고 나와 벽을 부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독일 통일의 시작이었다. 실제 장벽은 이날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1991년까지 서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248휴전선.

전쟁의 총성이 멈춘 그 순간 남과 북이 대치했던 경계선은 군사분계선이라는 아픈 이름을 얻었고, 70여년이 흐른 지금도 철책과 지뢰로 무장된 채 분단의 상징물로 남아있다.

자유로이 남북을 넘나드는 철새를 부러워할 뿐, 넘어설 수 도 넘어서서도 안 되는 곳.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거듭난 베를린 장벽을 바라보며 기원해 본다.

수십년 세월동안 비극을 품은 채 서 있는 철책선이 사라지는 그날,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꼬리표를 때는 그 날을. 다시 한번 한반도 평화의 봄을 꿈꿔본다. 조금은 더디지만 꼭 이루어 질 것이라 믿기에.

 

황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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