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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스나이퍼 sniper] 57. 꾸준함이 이긴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9-06-21 00:00
일터에 출근(出勤)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출근을 함으로써 나와 내 가족이 생활할 수 있다. 대인관계의 구축 역시 출근이 가져다주는 힘이다.

한데 출근에도 각자의 개성과 고질병이 양립한다. 필자처럼 새벽 첫차로 출근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해진 시간에 칸트처럼 도착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직원도 눈에 띄는데 이 자에겐 100점 만점에 10점도 과분하다.

지각도 모자라 무단결근까지 잦은 직원이 있다. 지난달엔 무단결근을 두 번, 그것도 나흘이나 했다. 필자는 8년 째 근무하고 있지만 지금껏 지각 한 번을 모른다.



그처럼 업무와 성실(誠實)에도 등한시 하는 직원이건만 직장 상사는 그 대상이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징계조차 안 하고 있어 직원들의 불만은 임계점을 넘었다.

부지런한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건 상식이다. 다른 직원보다 1시간만 일찍 출근해도 아침 출근길의 '지옥철'은 강 건너 불 구경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 시간에 책을 본다면 1년에 최소 200권은 뚝딱이다.

필자는 사자성어의 달인(?)답게 평소 사자성어를 자주 활용한다. 그중 비교적 많이 차용하는 사자성어에 '종두득두'(種豆得豆)가 포진한다. 콩 심은데 콩이 나며,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이를 동원시킨 것은 필자의 또 다른 사관인 "좋은 나무가 되려면 그 근원의 뿌리가 좋아야 한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위에서 출근의 중요성과 성실을 함께 논했다. 성실(誠實)은 '정성스럽고 참됨'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실은 출근과 동격인 셈이다. 이른바 '김영란 법'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외)보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꿋꿋이 명맥을 잇고 있는 사보들이 있는데 [월간 내일]이 그중 하나다.

고용노동부 발행인데 금년 6월호에 게재된 <옛 직업을 찾아서> 코너가 유익했기에 소개한다. 과거엔 식자공이란 직업이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요즘, 이런 세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책의 글자 하나하나에 누군가의 정성이 담겨 있다는 걸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 신문의 탄생부터 함께해온 이 사람들은 기자가 원고를 넘기면 빠른 손놀림으로 판을 짰다. 신문의 형태로 인쇄가 가능하도록 활자들을 정교하게 배치하는 게 이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쇄 산업에서 잊혀서는 안 되는 식자공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리는 날마다 다양한 인쇄물들을 만나곤 한다. 간단한 홍보물부터 두꺼운 책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인쇄물들이 있다.

지금이야 컴퓨터의 도입으로 인쇄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간단해졌지만, 예전에는 하나의 인쇄물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인력이 투입되었다. 활자 조각공, 문선공, 식자공, 인쇄공까지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들이 작성한 원고를 받아 식자작업하는 이 사람들은 당시 신문사에서 절대적인 존재였다. 악필로 쓴 원고도 알아보며 원고에만 집중한 채, 활자를 뽑아내는 손놀림 덕분에 마감 시간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96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에서도 식자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 김산은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상하이 임시정부로 찾아가 당시 임시정부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의 식자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식자공으로 일하며 안창호, 이동휘와 같은 전설적인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독립운동에 만나 힘을 보탰다. 역사 속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식자공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인쇄물들이 보존되고 남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식자공에게는 판을 짜는 능력은 물론 빠른 판단력과 미적 감각도 필요했다. 속보가 들어오면 그에 맞게 기사를 줄이고, 알맞은 사진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것까지 이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오탈자가 나와서도 안 되기 때문에 문장 이해력 또한 겸비해야 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이들은 지식인 노동자로 불렸다. 그러다 198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으로 인쇄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당시 숙련된 식자공을 구하기 어려웠던 신생 매체인 <한겨레신문>은 컴퓨터 조판 방식을 도입했다.

CTS 시스템이라 불리던 컴퓨터 조판 방식은 식자공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후 점차 많은 신문사들이 이러한 컴퓨터 조판 방식을 도입하면서 식자공들의 일자리는 점차 줄어갔다. 시대 변화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들을 지금은 만날 수는 없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식자공의 정성은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월간 내일' 기사 인용) 식자공이 업무에 태만하여 늘 지각이나 하고 툭하면 결근까지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랬다면 매일 아침 신문을 기다리던 독자들은 과연 어찌 되었을까? 자화자찬이지만 '팩트' 차원에서 거듭 강조한다. 필자가 현재 열(10) 곳이나 되는 매체(작년까지 8곳이었으나 올해 들어 3곳이 추가되고, 1곳은 빠졌다)에 글을 싣는 기자와 작가까지 된 것은 오로지(!) 성실과, 남들보다 최소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힘에서 근거했다. 부지런한 사람은 못 당한다. 꾸준함이 이긴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홍경석-작가-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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