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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적절한 보상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입력 2019-06-21 00:00   수정 2019-06-21 00:00

고 서영훈(徐英勳, 1920 ~ 2017) 선생이 필자의 저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준 일이 있다. 행사 후 선생과 몇몇 사람이 뒤풀이 겸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지역 대학 대학원장이 찾아와 함께 하게 되었다. 대학원생 특강에 서영훈 선생을 초대하고 싶다 한다. 강의료로 100만 원을 준비했는데 가능하냐고 묻는다. 당시 서영훈 선생은 KBS 사장을 역임하고,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거쳐 적십자사 총재를 맡고 있었다. "너무 많아요. 대학 강사 강의료가 얼마인데, 내가 그렇게 많이 받아요" 하며, 쓸데없는 말이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생각하는 세태에 너무 뜻밖이라서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방송인 김제동의 고액 강연료가 세간의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마침내 대덕구청(구청장 박정현)은 전격적으로 강연을 취소했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김제동은 모두 7차례 고액 강연을 하였다. 대덕구가 책정한 강연료는 1,550만 원이었다. 다른 지역은 그보다 많기도, 적기도 하다. 논산시(시장 황명선)만 하더라도 2014년 7월 17일 건양대 문화콘서트 홀에서 '문화 향수 욕구 충족'에 1,000만원, 2017년 9월 20일 연무읍 육군훈련소 연무관에서 '참여민주주의 실현 2017 타운홀 미팅' 행사 시 1,620만 원을 강연료로 지급한 바 있다. 아산시(당시 시장 복기왕)는 2017년 4월과 11월 2회에 2,700만 원을 지급하였다.

필자는 김제동의 강의를 들을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어쨌거나 그의 강의가 가끔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그만큼 인기나 영향력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화제가 되었던 몇 가지 강의를 들어 본 일이 있다. 강의에 놀라운 경륜이 담겨있거나, 학문적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왜곡이 심했다. 그의 말대로 웃자고 하는 소리이다. 우스개에 지급하여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될까? 강연료가 합리적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2016년 광주 토크콘서트에서 "주당 근로시간이 60시간이 넘어가면 과로사 기준인데, 아이들 주당 몇 시간 공부합니까? 공부 안 시킬 순 없지만 덜 시킬 수 있는 방법, 한 곳으로 몰리지 않는 방법 생각했으면 좋겠다. 판사의 망치질과 목수의 망치질이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고, 의사가 환자의 상처를 깁는 일과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바느질 하는 것이 똑같은 가치를 부여받는 사회가 된다면,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인간의 가치가 존중받고 훼손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얼마나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인가? 뜯어보면 현실성도 책임감도 없는 이야기다. 직업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마땅히 상호 존중되어야 함은 당연지사다. 인간의 권리, 인격, 가치, 행복추구 등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일과 역할의 구별 없이 동등하게 보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서로 다름, 선택이나 노력, 그 과정도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사회가 사회로서 존속하는 한 누구나 언제고, 대통령의 직무와 같은 의무와 권한을 가질 수는 없다. 가질 필요도 없다.

대중강연은 듣기 좋아야 하고, 재미있으면서 내용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바른 내용이어야 한다. 김제동의 말이 재치가 돋보이고 언필칭 재미있는 측면은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을 시원하게 해 주는 부분까지도 있다. 본인 스스로 '사람을 웃기는 것은 자신이 있다.' 한다. 그렇다고 그를 발판삼아 곡학아세曲學阿世해서야 되겠는가? 공인은 공인으로서 책임이 따른다. 공개석상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면 공인이라 할 수 없다. 언행에 있어, 그가 누리는 대중성의 크기만큼 책임이 요구된다.

언행일치와 일관성도 중요하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달리 펼치는 논리를 논리라 할 수 있는가?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이 시장 논리를 펼친다. 시장 경제를 무시하던 사람이 다급하다고 시장 논리를 펼칠 수 있는가? 그동안 그가 해 온 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시장가치도 다분히 왜곡되어 있다. 스포츠인이나 연예인을 거론하며, 일각에서 그의 시장가치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변호하기도 한다. 강연 내용이 강연료에 부합하는 충분한 시장가치가 있는가? 비교우위에 있는가? 자기 자본으로 움직이는 개인이나 기업이 그런 돈을 주고 강연을 요청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연주회가 수익성이 있으면 시장이 알아서 주도한다. 연주자 스스로 관을 찾지도 않는다. 김제동의 경우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정당한 시장 반영이라 할 수 없다.

분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인기를 등에 업었다 해서 아무 일에나 나서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일생 연구하고 구현하며 종사해 온 사람은 무엇인가? 그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사회 제반 문제에 많이 관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상할 게 없다. 누구나 관점이 다르다. 그렇다고 다 말하며 살지 않는다. 참여하지도 않는다. 해당 분야 전문가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측면에서고, 정치에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본인이 이용당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정치적 식견이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대중성만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정쟁이나 정치 공세 소재로만 활용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본질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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