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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폭염과 폭력의 관계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19-07-01 13:32

신문게재 2019-07-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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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만 배재대 교수
유럽 곳곳이 40도를 넘는 폭염으로 몸살이다. 독일 아우토반의 속도가 제한됐고 프랑스에서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폭염은 삼림에도 재앙이다. 폭염이면 인간들도 폭력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여름철 더위에 지친 운전자들의 자제력을 상실한 폭력적인 모습도 심심찮다. 폭염이면 운전자들은 경적을 더 길게 누르고, 가게 판매원들은 서비스정신도 가라앉게 된다. 폭염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은 더 적대적이고 더 반사회적이고 더 예민해진다고 한다. 기후변화가 궁극적으로 사회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기후변화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폭력적 환경을 야기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기후변화라고 하면 알프스 빙하가 녹거나 섬나라가 물에 잠기는 장면을 떠올린다. 기후변화는 자연의 변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구촌 사회를 재편하거나 사회적 파국을 야기하는 사회적 재난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수단은 기후변화로 나라 전체가 폭력과 내전에 휩싸였다. 환경변화와 생존경쟁으로 인한 폭력으로 고향을 등진 환경 난민 문제도 빈번한 지구촌 뉴스거리가 되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야기된 갈등과 전쟁, 이민과 배척, 기아와 죽음도 궁극적으로는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가파른 지구 온난화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사실이다. 아이오와 대학의 크레이그 앤더슨 교수는 지역과 연도에 따른 범죄율을 60개국의 자료를 바탕으로 폭염 스트레스가 폭력성과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의 경우 대략 섭씨 1도 상승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5,000건 이상 폭력사건이 늘어났다고 한다.



폭염은 심각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폭염의 여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언제나 상호작용이 있는 특정 상황에서 폭염은 '불쏘시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적색 신호등 앞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마주한다고 해서 공격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의 무더위가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속적인 폭염이 사람들을 보다 호전적으로 변화시킨다고 한다. 음주량이 늘어나면서 투쟁심도 더해지는 것이다. 폭력과 살인, 강간도 증가한다. 더위를 먹은 사람은 불안감도 적어지고 각성도도 떨어져서 실수도 잦고 주의력도 없어질 뿐 아니라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보면, 폭염으로 살인이 더 많아진다는 예측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실험에 의하면, 피실험자가 폭염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더 복잡하다. 폭력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할 줄 안다고 한다. 인간은 더운 아프리카에서 진화했으니 이미 더위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이치이니 여름에는 더위를 느껴야 건강에도 좋다는 식이다. 정말 그럴까. 인간은 기후에 적응하려고 신체적 적응보다는 사회문화적으로 적응하는 법을 터득했다. 더위를 이기려고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과학적 혁신을 택한 것이다. 인간은 더위를 견디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 에어컨 발명 같은 과학적 혁신을 통해 더위를 이기도록 진화한 셈이다. 문제는 이런 과학적 혁신이 기후변화의 요인들 중 하나로 작용했기에 지구촌 곳곳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후와 범죄가 무관하다며 기후변화의 요인에 무관심한 면도 없지 않았다. 좁게는 사건시점에 폭염이 얼마나 지속적이었느냐는 물음보다는 오히려 가해자의 나이, 성별, 수입과 같은 것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넓게는 기후변화가 더 많은 환경재해와 난민운동으로 이어져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극명한 기후변화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구조, 인간의 심리적 적응과 폭력의 순환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부정의 공간으로 빠져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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