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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직업’이 아닌 ‘진로(앞으로의 삶)’를 이야기하는 사회

김병진 이투스교육평가연구소장

입력 2019-07-30 08:28   수정 2019-07-30 17:56
신문게재 2019-07-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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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이투스교육평가연구소장
여러 해 동안 고등학생들을 현장에서 만나고 난 뒤 드는 아쉬움 중 하나는, 학생들이 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도 그 의미가 아주 낮거나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생각보다 많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활발한 논의로 인한 관심도가 증가에 따라 '전공적합성'이라는 단어와 '진로희망사항'을 기계적으로 연결시키는 오해도 그 강박관념을 강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많지만, 많은 수의 학생들이 꿈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꿈, 즉 진로를 가진 학생들에게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진로=직업'이라는 제한되고 편협한 인식이다. 직업이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직업은 과정이거나 수단이다. 진로가 중요하다면 그것은 진로에 대한 고민과 그 결과가 학생의 철학이며 궁극적인 가치관이기 때문이지, 직업과 연계하여 그 직업에 맞는 학과 선택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허황된, 그러나 구체화의 원동력

예를 들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거창한(?) 목표를 가진 학생이 있다. 누군가는 허황된 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래서?"라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아주 추상적인 '인류', '도움'이라는 단어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출발은 '인류'의 정의부터이다. 본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인류를 생각하면 된다. 나의 관심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있는지, 민족에 있는지, 국민에 있는지, 이웃 나라에 있는지. 이웃 나라에 있다면 어떤 상황에 처한 이웃 나라에 있는지.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에게 있는지. 그 관심의 대상이 바로 나의 철학이며 가치관의 출발점인 것이다. '인류'라는 카테고리 중에서도 관심이 '학생'에게 있다면, 그 다음 고민을 이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얼핏 '구체성이 담보되지 않는' 허황된 고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의 소중한 가치와 출발을 배울 필요가 있다. 막연해 보이는 꿈이더라도 그 꿈을 허황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노력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다는 것이다.

▲'왜'가 빠진 고민, 결국 사회 전체의 문제



세상의 많은 일에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그 상상력을 현실화시킨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 성공의 출발은 "왜"라는 질문이고, 그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잊지 않는 것이 성공을 불러온다. 그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구체성의 확보'와 관련된다. 결국 위의 '허황된, 그리고 구체화'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많은 사회적 문제들은 그러한 출발점으로서의 '왜'로부터 벗어나 있다. '왜'로부터 벗어나다보니 원칙과 근원적인 해결은 사라지고 현상적인 해결책만 계속 반복되다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가 문제라면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지를 봐야 한다. '경쟁 사회'와 '대학 서열화'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면 이를 손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가는 방법만을 다루다 보면 결국 엉망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경쟁과 서열화를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이 역시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진 이투스교육평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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