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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폭염엔 폴라폴라 폴라포

입력 2019-08-07 09:46   수정 2019-08-07 10:23
신문게재 2019-08-08 18면

폴라포
아, 또 폭염이 들이닥쳤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폭염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작년 이맘 때 회사에서 점심 시간에 지인 장례식장에 갔다가 길에서 졸도할 뻔 했다. 이글거리는 햇볕이 불에 달군 인두가 살을 지지듯 뜨겁고 아팠다. 그런데 건물 공사장에서 노동자들이 벽돌을 등에 지고 철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시커멓게 탄 팔뚝이 햇볕에 번들거렸다. 40도에 가까운 불볕 더위 일지라도 저들은 일을 해야만 한다. 일하지 않으면 하루 일당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거나, 이주 노동자일 수도 있는 저들을 위한 그늘은 존재하는가. 낯익은 풍경을 볼 때마다 제각각 삶의 운명이 예정된 거라면 내 삶의 중심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이면 대전 보문산 시루봉에 빙과 장수가 온다. 하나에 천원이다. 시루봉까지 헉헉거리며 올라와 빙과 장수를 보면 저걸 메고 올라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방과 장수는 등산객이 올라올 때마다 "아이스께에끼~" 라고 목청껏 외친다. 아이스케키는 '아이스케이크'의 일본어화된 말이다. 오래 전부터 쓰던 말이라 익숙하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케키를 먹는 순간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일종의 성취감마저 들 정도다. 하루는 노인 두 분이 정자에 앉아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문재인이 어떻고 아베가 저떻고 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러다 한 노인이 옆에 앉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아가씨한테 "애기 엄마들은 어떻게 생각 혀? 내 말이 틀렸남?" 하는 게 아닌가. 응? 누가 봐도 애들인데 애기 엄마라니? 어린 처자들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키득키득 웃으며 소근거렸다. 입을 삐죽거릴 만도 한데 노인이 주는 사탕을 공손히 받는 걸로 봐서 심성이 착해 보였다. "사모님도 사탕 하나 드슈." 난 아줌마가 아닌 사모님으로 등극했다.



태어나서 제일 맛있게 먹은 빙과가 있다. 30대 후반에 대둔산에 갔었다. 아찔한 90도 각도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다음 수락계곡으로 내려갔다. 수락계곡 쪽은 등산객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왔다. 처음 가는 길이라 얼마를 더 내려가야 하는 지 몰라 겁이 더럭 났다. 순식간에 하늘이 시커메지자 새 소리도 안 들렸다.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컴컴한 숲은 유령이 나올 것처럼 음산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방망이질로 쿵쾅거렸다. 허겁지겁 내려오다 보니 드디어 평지가 나타났다. 구름도 거짓말 같게 사라져 뭐에 홀린 기분이었다.

허름한 슈퍼가 눈에 띄었다. 시골에선 슈퍼에서 버스 표도 판다. 슈퍼 안에선 주인 아저씨가 낡은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전날 인터넷 검색으로 대전 가는 버스가 오후 1시 차가 있다는 걸 안 터라 주인 남자에게 확인 차원에서 물어봤다. "어떤 씹새끼가 그 따위 거짓말을 헌대유?" 난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께 어떤 씹새끼가 그런 말을 했나구유. 3시 차유." 동네 건달같은 그 남자는 송충이 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으로 아이처럼 하드를 빨아먹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서부영화에서 촐싹대다 무법자에게 한 방 맞고 나가 떨어지는 얼간이 같았다. 난 어이가 없고 웃겨서 그만 웃음보를 터트렸다. 긴장이 풀리면서 비로소 갈증으로 목이 탔다. 빙과를 하나 사서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올라 배낭을 베고 누웠다. 파란 하늘에 목화솜같은 흰 구름이 한가롭게 떠다녔다. 입구 껍질을 벗기고 아삭아삭한 포도색 얼음을 씹어먹고 녹여 먹었다. 지금도 빙과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다. '폴라포'.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먹는 폴라포가 그렇게 달콤하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죽음의 사막에서 살아 돌아온 여행자가 원주민한테 한 바가지 얻어 먹은 물맛이 이럴까.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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