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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불로하의 애국가

안성혁 작곡가

입력 2019-08-19 09:58   수정 2019-08-20 17:29
신문게재 2019-08-20 23면

안성혁
안성혁 작곡가
1944년 7월 11일 불로하 강변에서 5명의 젊은이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이들은 중국 서안에 주둔했던 일본 스카다 부대를 탈출, 김구 선생이 주석으로 있는 중국 중칭(중경) 임시정부로 출발하려던 학도병들이다. 장준하, 김준엽 등 청년들은 조국의 광복을 바라며 중국 불로하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그들이 부른 애국가의 선율은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의 선율이었다. 한국인이라면 외국에서 태극기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필자가 독일에 있던 2002년 월드컵 때다. "대한민국"을 외치던 교민들은 "40여 년 동안 독일에 있으면서 이렇게 우리나라를 외쳐보긴 처음이다"라며 감격했다. 조국은 이렇게 소중하다. 더욱이 70여 년 전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애국가를 부른 청년들의 가슴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 후 그들은 광복군에 소속되어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제 당시의 다른 음악도 살펴보자.

음악은 삶에 용기를 준다. 연주하거나 감상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희망을 준다. 일제 강점기에도 음악은 그랬다. 이 시기의 음악, 독립 운동가들이 부른 곡을 곡 소개한다. 첫 번째 독립군의 '독립군가'다. "신대한의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로 시작하는 군가다. 이 곡에 사용된 선율은 찬송가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의 선율이다. 이 선율을 독립군가의 가사에 맞게 변형시켜 불렀다. 독립군은 이 곡을 부르며 훈련하고 단결했다. 두 번째째 '거국가'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잠시 뜻을 얻었노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의 내용이다. 한반도를 떠나는 독립 운동가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 세 번째는 독립운동하셨던 분들을 추모하는 "영웅추도가"다. "빛날세라 영웅열사 만세불망 하실 이/ 옛적이나 지금이나 항상 앙모합니다…" 이 곡의 선율은 하이든의 '황제' 현악 4중주 2악장의 주선율을 사용했다. 작곡가 윤이상은 무장독립투쟁을 했고 작곡가 채동선은 일제의 회유를 뿌리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며 저항했다. 이렇게 음악가들은 일제에 저항하며 우리 민족에게 음악으로 힘을 주고자 했다.



8월이다. 우리가 광복을 맞은 지 74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아직도 평행선상을 달리고 있다. 일본의 철저한 사죄와 한국의 용서를 통해 화해를 이루고 정상적인 한일관계로 회복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음악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난해 오사카에서 열렸던 한일 남성합창연주회에서 한국 서울 센트럴 남성합창단이 필자가 작곡한 '서시'를 불렀다. 시인 윤동주는 한일 모두가 좋아하는 시인이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가제 남성합창단과 연합해 그리운 금강산(한국), 탱자나무(일본), 들장미(독일)를 부르며 서로 시와 음악으로 가까워질 수 있음을 보았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 음악은 우리 민족에게 힘이 됐다. 그렇게 우리 민족은 수난기를 이겨 냈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당당히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며 우리의 삶을 개척할 것이다. 그 옆에 음악도 같이 갈 것이다. 안성혁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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