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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폴란드인의 용기

이성만 배재대 교수

입력 2019-09-02 09:10   수정 2019-09-02 10:01
신문게재 2019-09-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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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만 배재대 교수
우리는 독일인의 용기라면 구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를 기억한다.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에서 저지른 나치 만행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1970년 바르샤바의 게토영웅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묵념하는 그의 모습은 그 어떤 외교적 합의보다 독일에 대한 폴란드인의 해묵은 응어리를 풀어준 사건이었다. 브란트와 독일 정치가들의 부단한 사죄가 가해자 독일을 용서하도록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와 정치가들이 독일의 빌리 브란트와 정치가들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미화하는 일본의 망언은 독일의 폴란드에 대한 자세와 배치되는, 세계인의 양심을 비웃는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금년 8월 1일, 독일 연방외무장관 하이코 마스가 바르샤바에서 나치 대항 봉기 75주년에 즈음해 '폴란드인이 독일인에게 당한 것에 치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폴란드인의 용기에 경의를 표했다. 연방외무장관은 독일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마스는 이곳 바르샤바에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히틀러에 저항하다 희생되었는지를 기억하며 바르샤바 추모행사 연설에서 나치의 잔인함에 대한 폴란드인의 '믿기지 않는 저항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봉기 추모를 위해 바르샤바에 초청한 것을 '신뢰의 특별한 표시'라고 하며, '폴란드와 독일이 오늘 이웃과 친구로서 강한 신뢰를 함께 한 것'에 감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폴란드는 독일과의 악연이 깊다. 2차 세계대전도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됐다. 1943년 봄 나치가 바르샤바 게토 소탕작전을 명령하자,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벙커에 몸을 숨기고 무장 봉기를 결의했다. 4월 19일부터 5월 16일까지 게토 내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나치는 벙커에 숨은 유대인을 소탕하기 위해 독가스를 무자비하게 살포했다. 유대인 학살 후 나치는 게토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바르샤바의 고통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1944년 8월 1일 폴란드 저항군은 바르샤바 시민의 도움으로 점령 나치 군을 수도에서 몰아내려 했지만, 독일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봉기는 잔인하게 진압됐다. 63일 만에 저항군은 항복했다. 20만 여명의 폴란드 군인과 시민이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고, 50여만 명이 추방당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강제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강요당했다. 나치는 보복으로 바르샤바를 거의 완파했다. 나치 점령군이 철수한 후, 한때 '동유럽의 파리'로 불리던 바르샤바는 90%나 파괴됐다. 1944년의 바르샤바 봉기는 그래서 1943년 4월과 5월에 나치에 의해 유혈 진압된 바르샤바 게토 폭동과 혼동되기도 한다.

폴란드의 근대사는 한의 역사다. 폴란드는 통일독일의 중심이 된 프로이센과 러시아 때문에 18세기 후반부터 123년간 유럽지도에서 사라졌다.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는 전쟁, 테러, 조직적인 대학살로 전체 인구의 15-17%에 이르는 5∼6백만 명을 잃었다. 독일의 마스 연방외무장관은 독일에 대한 폴란드의 배상금 요구에 대해 이 문제가 법적으로는 '종결'됐다는 연방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렇지만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독일의 책임과 관련해서 폴란드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폴란드는 아직도 전쟁 피해의 배상과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1970년대부터 독일은 과거사를 참회했지만 여전히 폴란드는 불만이다. 그러나 폴란드는 과거사, 외교, 안보 등의 문제로 이웃 독일을 비판할 때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국민경제든 기업경제든 먹고 사는 문제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양국 관계를 나락으로 몰고 가지는 않겠다는 전략이다. 그래서 독일의 투자를 이끌어내어 유럽의 신생부국으로 줄달음질치는 중이다. 이것이 과거는 기억하되 현재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폴란드인의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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