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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추석유감

입력 2019-09-15 10:41   수정 2019-09-15 15:22
신문게재 2019-09-1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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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또 지나갔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만큼 그 집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어느 집은 제사를 지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도 있고, 어느 집은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며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우리 집은 딱 그 사이 어딘가의 집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막내아들이었다. 때문에 어르신들은 큰할아버지댁에 모였다. 큰할아버지의 직업은 목사였다. 제사 역시 패스였다. 덕분에 우린 적당히 먹고 싶은 음식들을 그때 그때 해 먹으며 명절을 보냈다. 추석엔 송편을 만들었고 설엔 떡국을 먹었다. 전도 동그랑땡 정도가 끝이었다. 산적이라도 추가되는 날은 손에 꼽았다. 제사 스트레스는 일절 없고 많은 식구를 대접할 필요도 없지만 해외여행 역시 무리인, 그냥 보통의 명절을 보내는 대한민국 표준 가정.

그렇게 딱히 별다른 것 없어 보이던 우리 집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 때. 어릴 땐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전혀 몰랐다. 어느 한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하게 우리 집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는 아직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 집은 겸상을 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면 꼭 두 개의 상을 폈다. 큰 상 하나, 작은 상 하나. 큰상에는 남자들만 앉았다. 할아버지부터 아빠, 작은 아빠들 그리고 집안 장손인 사촌 동생까지만. 자연스레 그 옆의 작은 상엔 며느리들과 나를 비롯한 손녀들이 쪼르륵 둘러앉았다. 조선 시대에나 했던 일들을 아직 하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의 이런 모습은 남녀차별하에 벌어진 행태들이 아니었다. 어른 중 누구도 큰 상과 작은 상의 경계를 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큰 상에 떡하니 앉아 있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손주들을 성별에 따라 특별히 더 예뻐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남자들이 청소나 빨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절대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문제는 무지였다. 남녀가 밥을 따로 먹는 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것이다. 예로부터 이어져 온 좋지 못한 관습이 나쁘고 바꿔야 할 문화라는 사실을 외칠 용자가 말이다.

어쩌면 밥을 빨리 먹기 위한 편의 때문에, 논란거리를 만드는 게 귀찮아서, 특별히 문제 될 것 없어서라는 생각으로 일 년에 두 번 있는 찝찝한 마음을 그냥 넘겼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번 추석에도 작은 상을 택했다. 20년 넘게 배어 온 습관 때문인지 큰 상은 어딘가 어색했다. 하지만 다음 명절엔 은근슬쩍 큰 상에 앉길 다짐해본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작은 움직임이 될지라도 말이다.
유지은 기자 yooj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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