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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예술의 소비가 도시의 품격을 높인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19-09-16 08:08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이사장
많은 사람이 예술가의 가난을 당연하게 여긴다.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경제학자인 한스 애빙은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라는 책에서 예술가의 과잉공급을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했다.

저자는 예술계는 오직 1등만이 존재하는 무한경쟁에 가까운 분야인데, 성공 신화를 동경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지칠 줄 모르고 뛰어들어서 예술세계는 항상 가난한 예술가로 넘쳐난다고 하였다. 그는 또 예술지망생들을 부추기는 예술학교의 설립과 정부의 지원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게 되므로 이를 지양하고 철저히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 누구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많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더군다나 오랜 기간에 걸쳐 예술의 소비시장이 형성되고 문화산업이 발달한 유럽의 선진국들과 예술의 전반적인 환경이 아직 척박하기만 한 한국을 동일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예술가의 가난 문제는 시장의 관점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또한 동정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더욱더 안 된다. 어느 회사의 제품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회사는 망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별반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가 가난해서 혼신의 힘으로 창작하지 않는 힘든 환경이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예술을 향유하는 나 자신과 우리 사회로 되돌아올 것이다. 결국 예술가의 빈곤으로 동정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다.

1961년 1인당 GDP가 93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는 불과 50여 년 만에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런데 문화예술의 수준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문화예술의 수준은 경제 성장에 따라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오랜 기간 차곡차곡 쌓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빈곤 문제를 시장에 맡기려면 질 높은 창작과 함께 건전한 소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나, 우리의 예술 소비시장은 여전히 8~9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K-pop에 세계가 열광한다고 기뻐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노래의 음원은 공짜로 내려받기를 좋아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젊은이가 창작에 몰두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천박한 문화예술 수준으로부터 탈출하려면 예술의 소비 시장을 키워야 한다. 돈은 써 본 사람이 쓸 수 있다고 한다. 예술도 어릴 때부터 부모 손잡고 오페라 공연과 연극을 보고 미술관도 다니며 소비해봐야 커서 데이트하며 연인끼리 또는 결혼해서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의 소비 수준이 향상될 때에야 비로소 예술가가 정부의 판에 박힌 지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공공기관이 많이 있는 대덕특구에서는 그동안 지역 사회와의 상생협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특구진흥재단은 최근 대전시립미술관의 추천을 받아 지역 청년작가의 예술 작품 몇 점을 1년간 임대하여 재단 사무실 건물에 전시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한 바 있다.

작품 대여료, 보험료, 운반설치비 등을 포함하여 그리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직원들에게는 훌륭한 작품을 감상하고, 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마침 개최된 재단의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작가로부터 직접 창작 과정과 작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더욱더 좋았던 것 같다.

특구재단과 대전시립미술관은 대덕특구의 출연연들과 협력해 이 같은 지역 청년작가의 미술품 임대 전시프로그램을 확대해나가기로 하고 세부 사항을 협의 중이다. 이러한 노력이 지역 청년작가들에게는 계속해서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작은 응원이 되고, 우리에게는 예술 작품이 조금 더 쉽고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이 지나 예술을 소비하는 습관이 친구로 이웃으로 전염되고, 예술 소비시장과 함께 대전 시민의 품격이 한껏 높아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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