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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원도심,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스토리를 입히다

장시득 대전시 도시재생주택본부장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19-09-26 10:40

신문게재 2019-09-23 20면

사진(장시득 본부장님)
장시득 대전시 도시재생주택본부장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는 해마다 40만 명의 인파가 모인다. 해수욕을 즐길만한 바다도 없고, 특별한 관광지도 없는 이곳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메밀꽃'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의 메밀꽃이 거기, 봉평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자체에서 마련한 축제와 다양한 콘텐츠, 볼거리까지 더해져 해마다 많은 사람이 봉평을 찾는다.

또한 스페인의 작은 시골 마을, 콘수에그라에는 나란히 서 있는 10여 개의 풍차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린다.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16세기 풍차들이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곳이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격하는 돈키호테의 이야기에 매료된 수많은 관광객이 해외 각지에서 찾아와 이 작은 마을에는 언제나 생기가 돈다.

이렇듯 이야기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소스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먼 이국 사람들을 작은 시골마을로 초대하기도 하고, 별다른 특산물이 없는 작은 도시의 경제를 좌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거기에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떠돌이 장돌뱅이, 허생원이 메밀꽃이 핀 달밤에 자신의 아들인 동이를 알아보는 장면은 여느 드라마 못지않게 흥미롭다. 매일 밤 우리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당기는, 잃어버린 혈육을 찾는 드라마들의 고향은 바로 「메밀꽃 필 무렵」일지 모른다.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탄탄한 소스(스토리) 하나는 2차, 3차 다양한 콘텐츠로 확산이 가능하다. 때문에 좋은 스토리 발굴은 출판, 전시, 영상, 관광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로 뻗어가는 주요한 모태가 된다.

대전의 원도심에도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새우젓을 팔러 온 상인이 잠시 지게를 놓고 쉬었던 곳이 목척교(木尺橋)가 되었고, 충청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중앙시장, 독립만세 운동이 시작된 인동시장, 공직자 가족이 거주했던 철도, 도청 관사촌(테미오래), 젊은이들로 북적였던 옛 극장 거리(현 케미스트리트), 인근 고등학생들의 통학로여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헌책방 골목, 대전 어린이들의 단골 소풍 장소였던 보문산,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옛 충남도청 등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대전의 원도심 곳곳에는 이미 오래 묵은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에서 이야기만큼 좋은 '소스'는 드물다. 대전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생성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경제 활성화로 연결한다면 자연스럽게 낙후된 지역에 활기가 생길 것이다. 현재 대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앙로 프로젝트는 신·구 지하상가 연결, 원도심의 보행환경을 개선해 다시, 사람이 모이는 원도심으로 재정비하는 사업이며, 하반기에 착공하는 도심형산업지원플랫폼은 지상 5층에 인쇄출판협업공장, 뷰티케어지원센터, 회의공간, 웹툰창작실, 기획인쇄사무실 등이 입주해 과거 인쇄업 등으로 누렸던 경제 호황을 재현해 원도심을 살리는 주요한 허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원도심은 늙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오래된 주름살에는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들어있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원도심을 걷다보면 알게 된다. 원도심은 그 자체로 거대한 박물관이다. 숨은 보물을 잘 찾아서 활용하는 것도 도시재생의 중요한 과제이다. 환경을 개선해 다시, 많은 사람이 찾고, 일자리가 늘어나 다시, 활기를 찾는 원도심을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대전의 '돈키호테'를 꾸준히 찾아 발굴해야 한다.

장시득 대전시 도시재생주택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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