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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모두가 지갑을 닫고 있다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19-09-23 08:20
이준원교수
이준원 교수
탈무드에는 '자기 아이에게 육체적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약탈과 강도를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도 부모에게 얻은 자산보다 더 귀한 것은 노동이며 미성년 시기를 지나면 독립을 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의식은 금세기에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근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간혹 부모님이 공무원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서 고민하는 학생을 만나게 된다. 안정된 삶이 약속된 공무원이 된다면 좋겠지만 젊음을 책상에 앉아 시간을 소비하며 높은 경쟁에 시달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에 젊음을 마음껏 펼쳐보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젊어서 셀프 고생은 고질병'이란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요즘 세대는 창의성을 발휘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모험을 선택하는 대신 안정지향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높은 청년 실업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걱정과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는 목표를 가지고 배재대학교는 올해부터 도전학기제를 시행하고 있다.



중도일보 보도에 따르면, '잡코리아'가 4년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진로 결정 시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48.6%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를 결정한 대학생 중에 고등학교 이전에 정한 학생들이 13.9%로 가장 많았다. 저성장 시대에 돌입한 한국의 경제 상황이 우려스러운 대목에서 학생들의 심리적인 불안감을 볼 수 있다.

과거 대학만 졸업하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모두 현실을 직시하고 눈높이를 낮추고 창업, 해외 일자리 등에 눈을 돌려야 한다.

미국에서는 제로 금리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제로금리 시대에는 시중에 돈의 유동성이 늘어나 자산 가격이 높아지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디플레이션이 나타난다.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적 공포에 대한 공감이 기업의 재투자와 개인의 지갑을 닫게 하고 있다.

미생물들은 생존에 필요한 주위 환경이 좋지 않으면 영양분과 조건이 좋아질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휴면 상태인 휴지기에 진입할 수 있다. 인간도 주위 생태계에 맞는 삶의 형태를 취하는 생존방식을 취한다. 심리적 공포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단계에 와있다. 일부 언론이 전달하는 잘못된 경고음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정부는 경기 전망을 낙관적으로 조성하는 정책과 참여자 간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제도를 우선 시행해야 한다. 세계적인 혁신은 대다수 평범한 개인의 자유와 창의에서 비롯된 사람 중심의 생태계에서 이루어졌다.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규제를 없애고 기업가의 역동적 창의성을 일으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친기업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소득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OECD 국가들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 구축과 같은 포용적 성장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의 대학을 나와 대전의 식품회사에 입사한 젊은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새벽까지 농수산시장을 오가며 식품을 옮기는 일을 하고 있지만, 또래의 다른 청년들이 보지 못했을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의 얼굴에는 밝음과 희망이 가득했다.

한국의 교육 제도로 인해 끈기와 성실과 같은 인성 능력보다 경쟁의 논리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부모와 사회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지나친 경쟁심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게 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잘못된 경쟁을 만들고 어려운 경제가 우리 삶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거짓 정보가 사라지고 여유 있고 역동적인 사회로 거듭나길 희망해본다.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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