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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항상 열린 귀와 코, 왜 일까?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입력 2019-09-27 00:00   수정 2019-09-27 00:00

세상일 모두 만족하며 일생을 영위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 살다보면 누구나 우여곡절이 있는 법, 불편부당한 것이 한둘이겠는가? 사회나 제도 따위를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고 싶은 것은 불문가지다. 집권하면 대부분, 하자마자 개혁을 외친다.

어쩌면 개혁은 보편적 진리의 실현이다. 고상한 논리를 끌어 들일 필요도 없다. 간단명료한 것이다. 군더더기가 붙으면 이미 개혁을 벗어난다. 본질은 사라지고 부허로 채워진다. 공의가 사라지고 사욕이 우선하여 판단 기준조차 흐려진다.

국가경영이 무작정 개혁에 있는 것도 아니다. 궁극은 국가장래, 인류공영에 있다. 가치판단 기준도 다르지 않다. 국가경영이라고 사람 사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좋은 점은 발전시키고, 잘못은 고쳐나가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이면 더욱 좋다. 모든 것이 서로 어울릴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요, 상생의 힘을 갖는다. 필자는 오랜 세월 하아모니 리더십을 주장해 왔다. 자연이 조화를 이루듯 사람일도 다르지 않다. 조화로운 것은 순리에 이른다. 맹자 이루편에 이른 말 아닌가? "천하에 도가 있으면 덕이 작은 자가 덕이 큰 자를 섬기고 덜 어진 이가 더 어진 사람을 섬긴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고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섬긴다. 이 두 가지가 하늘의 이치이니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살아남고, 하늘에 거역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孟子曰 天下有道 小德役大德 小賢役大賢 天下無道 小役大 弱役? 斯二者天也 順天者存 逆天者亡)

역사에 수많은 개혁주의자나 사례가 있다. 성공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 실패한다. 순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례 중 하나를 들춰보자.

고려 말 공민왕(1330 ~ 1374, 23년 재위)은 꽤 긴 기간 재위한다. 자주의식을 다지며 친원세력 제거와 나라 중흥을 꾀한다. 우여곡절 뒤 공민왕은 1356년 봄이 되어서야 본격적 개혁정책을 펼친다. 원나라를 등에 업고 출세한 권문세족을 제거한다. 일본 원정을 하겠다고 설치한 정동행성이문소(征東行省理問所)를 혁파한다. 원의 연호 사용을 중지하고 관제도 원의 것을 버린다. 나아가 북진정책을 펼치며 반원 세력과 긴밀히 교유한다. 그러나 마음만 앞섰다. 준비 없이 반원정책을 섣불리 펼치다가 지속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원나라 압력에 굴복하고 만다. 결국 사과하고 중단한다. 더구나 2차례 홍건적 침입으로 남은 국력마저 소진된다. 내란도 겹쳐 위기에 처한다.

내치는 어떠한가? 치세 동안 제일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 사람이다. 기존 벼슬아치는 뿌리가 얽히고설켜 서로 엄폐하고 보호한다. 신진세력 역시 명망을 얻고 귀하게 되면 힘 있는 자들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사익에 눈이 가려 처음의 뜻을 모두 잊는다. 유생은 과단성, 기백이 없어 말로만 만리장성을 쌓는다. 서로 파당 지어 바르게 세상을 보지 못하고 운신하지 못하며 나라를 혼돈에 빠트린다. 세 부류 모두 쓸모없는 자들이라 생각한다. 이에 세속에 초연한 인물을 등용코자 한다. 그런 사람으로 모든 폐해를 혁파하고 세상을 복되게 바꾸려 한다.

그렇게 발탁된 사람이 신돈(辛旽, ? ~ 1371, 고려 왕사)이다. 요즈음 말로 공감의 언어를 구사했을까? 노국대장공주를 잃고 슬픔과 실의에 빠져있던 왕의 혼을 빼앗는다. 요승에 지나지 않았으나 왕이 원하는 답을 내놓아 마음을 사는 것이다. 왕은 무한한 신뢰를 보내, 그로 하여금 인습으로 굳어진 폐단을 개혁하려 한다.



신돈은 먼저 개각을 단행한다. 석 달 만에 거의 모든 대신을 파면하거나 축출한다. 파벌도 없앤다. 항거하는 자는 삭탈관직 하거나 좌천시켜 오지로 내보낸다. 토지와 신분도 정리한다. 대신이나 농장주에게는 원성을 사지만 낮은 신분의 사람에게는 희망이 된다. 심지어 부녀자들에겐 문수보살 후신이라 칭송 받는다.

신돈은 참언을 빌려 성인이라 자처한다. 여자관계가 문란해지고, 사재를 축적하며 호의호식한다. 국가 재정은 바닥이 난다. 신임이 옅어지자 궁지에 몰린 나머지 반역을 꾀한다. 고발자에 의해 붙들려 수원으로 유배되었다가 이틀 만에 죽게 된다. 공민왕은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가 키운 신진세력에게 내몰린 측면이 있다. 스스로 지은 업보로 권문세가와 무장의 반발을 막을 도리가 없다. 민중은 정치적 지원세력이 되어 주지 못한다. 개혁이 혹세무민의 도구는 아니었을까? 신돈뿐이 아니다. 왕이 줄기차게 추진하던 모든 정책 또한 물거품이 된다. 쫓겨났던 무장과 유학자가 다시 등용되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너나없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하얀색은 없다. 희다고 우기지 말자. 따라서 오염되었으면 오염되었다고 하자. 거짓과 억지가 얼마나 볼썽사나운가? 분열을 획책하지 말자. 개인이 모여 전체가 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한다. 조화로워야 한다.

지식인이 고등사기 치면 그 죄질이 더 나쁘다. 법률 전문가가 교묘히 법을 피해 사악한 행위를 일삼으면 그 죄상이 더욱 크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성문화된 법만이 법이 아니다. 도덕적 규범도 있고, 역사적 심판, 하늘의 심판도 있다. 입과 다른 구멍은 모두 닫을 수 있도록 되어있으나 귀와 코는 항상 열려있다. 왜 일까?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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