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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기억의 장소, 브란덴부르크 문

이성만 배재대 교수

입력 2019-11-11 10:10   수정 2019-11-11 10:10
신문게재 2019-11-12 22면

이재만
이성만 배재대 교수
독일 통일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1791년에 개통되었다. 유럽역사의 드라마틱한 무대이자 1989년 11월 9일 역사적인 장벽 붕괴의 30주년 기념무대이기도 한 곳이다. 공교롭게도 11월 9일은 현 정권의 집권 절반을 채운 날이기도 하다.

1734년 당시 빌헬름 1세가 기존의 요새성벽을 허물고 베를린 시가지를 둘러싼 새 성벽을 건설하며 시가지와 외곽을 연결하는 18개의 성문을 구축했다. 19세기까지도 이들 성문을 지나야 성내 진입이 가능했다. 이후 이들 성문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었다.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2세가 1788년 북유럽 강국으로 부상한 프로이센의 국력을 과시하고 평화의 상징으로 베를린에 새 관문이자 랜드 마크로 성문 건축을 계획했다. 건축가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성문에서 영감을 얻고 의고전주의 양식으로 이 문을 설계했다. 이 문은 1793년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승리의 마차 모습을 한 청동상 쿼드리가로 장식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현재처럼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여왕이 아니라 그리스의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가 마차를 이끌었다. 그러니까 초기의 브란덴부르크 문은 '평화의 문'이었다.

그러나 이 평화의 문은 곧이어 전쟁터가 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정복하고 이 문을 통해 승리의 행군을 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쿼드리가를 떼어내어 전리품으로 파리로 가져갔다. 그 자리에 동상이 전시될 예정이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1814년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승리한 후 에른스트 폰 푸엘 장군이 쿼드리가를 되찾아서 다시 설치한 것이다. 칼 프리드리히 쉰켈이 이 문을 프로이센의 개선문으로 재설계했다. 이제 평화의 여신 대신에 승리의 여신이 프로이센 독수리와 철십자장을 손에 든 모습이었다.

국가 사회주의자들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그네들의 선전장으로 만들었다. 1933년 1월, 그들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해 횃불 행진을 하며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기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대파되었고, 분단 시기에는 소련 점령지역에 들어갔다. 1945년부터 1957년까지 쿼드리가 유적 위에는 소련의 국기가, 다음에는 구동독 국기가 나부꼈다. 파괴된 동상에는 말 머리 하나만 남아 있었는데, 현재는 베를린의 매르키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무튼 동서 베를린은 이념은 달라도 브란덴부르크 문 재건에는 협력했다. 다행히 1942년 쿼드리가 석고 주물이 만들어지고 재건되어 1957년에 제자리를 찾았지만, 6개월 후 동베를린의 지령으로 프로이센 독수리와 철십자장은 느닷없이 제거되었다. 1961년 8월 13일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서베를린에서 이 문으로 가는 길은 차단되었다. 동베를린에서는 국경 수비대 말고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독일 분단의 상징이 된 것이다. 1987년 6월 12일,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행한 역사적인 연설에서 "Mr. Gorbatschow, tear down this wall!"이라고 외쳤다. 2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1989년 11월 9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몰려들었다. 분단의 상징이던 이 문이 통합의 상징이 된 것이다. 1989/90년 해맞이 밤에 쿼드리가는 훼손되었고 일부 부품은 도난당했다. 수리 때 프로이센 독수리와 철십자장이 다시 설치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완전한 쿼드리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곳을 기억한다. 셀피, 해맞이 축제, 콘서트, 연설, 시위의 배경인 이유도 지난 2세기 동안 전쟁과 평화를 겪으며 유럽의 시대 변화를 오롯이 간직한 역사의 현장인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다른 어떤 건축물도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처럼 많이 담고 있는 기억의 장소는 없을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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