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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금남면서 한국전쟁 유류품 400여점 발굴…428명 전사한 전투 재조명

탄피·전투화·숟가락 등 미군 유류품 출토
1950년 미군 428명 전사 전의-조치원전투 재조명

입력 2019-11-17 10:57   수정 2019-11-18 19:42
신문게재 2019-11-18 6면

두집메두집메
충남 전의-조치원지구 전투에서 21연대 1대대 지휘소로 사용된 세종시 전의면 동교리 두집메 모습. 당시 미군이 촬영한 사진과 지금의 모습.
국방부와 육군 32사단이 최근 세종시 금남면 일원에서 전개한 6.25전사자 유해발굴에서 388점의 유류품을 발견하면서 69년 전 치열한 전투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눈여겨 보지 않았던 금남면 두만리 야산 일원에서 탄피 330여 개와 전투화, 105㎜ 포탄의C형 고리 20점 등 당시 전투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유류품이 대거 수거됐다.

또 전투식량을 담았던 포장제와 숟가락, 커피봉투 등이 발굴됐고 미군 장병이 전투복에 착용하던 철제장식도 추가로 발굴됐다.

이들 유류품은 모두 미군의 것으로 식별됐으며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치열한 방어전투를 펼친 미군 24사단 21연대 군인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2사단 99연대가 함께 진행한 이번 유해발굴 1950년 7월 9일부터 12일까지 미군 24사단 21연대가 북한군 2개 사단병력에 맞서 처절한 전투를 벌인 개미고개 및 공주·대평리 전투의 전사자를 찾기 위해 시작됐다.

미군 24사단 21연대가 38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한 북한 제4사단과 3사단에 맞서 이곳에서 1950년 7월 9일부터 나흘간 피의 전투를 벌였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 의해 21연대 미군 병력 60%가 손실되는 피해를 입고 결국 후퇴했으나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킴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승리한 전투라고 평가를 받는다.



국방부는 2000년 이후 세종시 일원에서 매년 유해발굴을 시도해 2011년 전사자 유해 8구를 처음 발굴했고, 2012년 30구, 2015년 1구의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찾았다.

그리고 전후 65년이 흐른 2015년 한국 전쟁기념관 연구팀이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자료를 분석해 세종시 전동·전의·금남면 일원에서 나흘간 진행된 '충남 전의-조치원지구 전투'를 통해 미군 428명이 전사했다고 처음으로 피해 규모를 확인했다.

또 당시 21연대 1대대가 민가를 빌려 전투 지휘소로 사용했던 주택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이곳에 올해 초 미군 관계자가 직접 다녀가 앞으로 한미동맹의 상징적 장소로 사용될 지 주목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내년 개미고개 전투가 전개된 전의면 동교리 일원에서 대대적인 유해발굴을 준비 중이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임봉영 세종시지회장은 "미군 지휘소로 사용된 동교리 두집메는 지금도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미동맹의 상징적 장소로써 보존할 가치가 높다"라고 설명했다.
세종=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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