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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입력 2019-11-18 16:13   수정 2019-11-18 16:13
신문게재 2019-11-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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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들녘엔 황금빛 물결이 춤추고, 따스한 햇살에 나무마다 알록달록 화장을 하느라 부산했던 가을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요즘은 숫자에 담긴 의미를 생각할 때가 많다. 33은 무슨 의미일까. 먼저 3월 3일 '삼겹살데이'가 떠오른다. 3이 두 번 겹친다 해서 양돈 농가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축협이 삼겹살 먹는 날로 정했다. 삼겹살에 쌈을 싸 먹자는 의미로 '쌈쌈데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정작 가만히 앉아서 혜택을 보는 쪽은 주류회사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빠질 수 없으니 말이다.

요즘 날씨는 최고인데 가슴은 조금 먹먹하다. 내겐 천천히 찾아오리라 여겼던 정년퇴임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누구나 한번은 겪는 일이라 남들보다 살갑게 맞이하려고 나름 준비를 잘 해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33년이 넘는 긴 세월을 한 직장에서 오로지 한솥밥을 먹으며 한 우물을 파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몇 번의 위기는 있었으나 가족과 지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 크게 축복받은 일이고 그래서 늘 감사하고 있다.

이제 열흘 남았다. 오래전부터 마음을 비우려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내 것을 챙기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자꾸만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욕망이 치밀어 올랐다. 여태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날이 더 많지 않음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소 혼돈 속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이 보였다.

태어나 대학원 교육을 마칠 때까지 30여년은 서울에서, 첫 직장으로 한국화학연구원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또 30여년을 대전에서 살았다.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것은 자기 의지로 어쩔 수 없지만, 취직과 결혼 그리고 퇴직은 얼마든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화학 관련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한길을 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얼마 전 사랑하는 딸이 결혼해서 새 가정을 꾸리게 되어 이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도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나는 자연인이다'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처음에는 부럽기도 하고 "잠깐은 저렇게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산에 들어온 사연을 들어보면 대부분 "사업을 망해서"가 아니면 "몸이 망가져서"다. 현실도피가 많다. 물론 아무 간섭과 구속 없이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지만, 이웃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 길도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내 편 네 편을 가르지 말고,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아야 한다. 먼저 "내 탓이오"를 외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모든 게 참으로 감사하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찾아온 퇴직을 누구보다 담대하고 반갑게 맞이할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이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잘 안다. 앞으로의 시간은 덤으로 얻은 시간이라 여기고,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미력하나마 사회공동체에 환원하고자 노력하겠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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