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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고려인의 밥상과 바지락탕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9-11-27 10:12
  • 수정 2019-11-27 14:53
밥
차는 커녕 운전면허증도 없는 원시인 체질이어서 식구들이나 친구들한테 면박을 당하기 일쑤다. 차가 있으면 얼마나 편한데 궁시렁 궁시렁…. 다행인지 여태까지 회사 근처에서 산다는 이유로 굳이 차가 있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여행갈 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고속버스를 타면 좋은 게 하나 있다. 꿀잠이다. 새벽에 일어나기 때문에 차에 타면 그때부턴 인사불성이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광고 카피가 있지만 고속버스 의자도 일류 생체공학자가 설계했나 싶을 정도로 탈 때마다 경탄한다. 안락한 의자에 몸을 맡기고 좌우로 머리를 흔들어가며(이젠 침은 안 흘린다) 반 기절 상태로 자다 깨어나 보니 어느새 태안버스터미널이다.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개관했다 길래 한달음에 달려갔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수채화 같은 바다는 잔잔했다. 신진도에 있는 전시관도 평일이어서인지 조용했다.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유물이라!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짜릿하다. 그야말로 보물선 아닌가. 전시관엔 바다 속에서 잠자다 올라온 유물이 가득했다. 접시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고려 청자, 철제 솥, 시루, 옹기 등과 곡물들. 천년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옛 사람과 나의 만남이 시작됐다. 눈 앞에 있는 그것들을 손으로 만져보면 고려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래 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찬찬히 보고 있자니 상상이 꼬리를 문다. 얼마 전 부여박물관에서 백제 사람의 머리카락을 보고 도대체 시공간이란 뭘까 상념에 잠겼었다. 어릴 적 틈만 나면 집 앞 야산에 올랐다. 화석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며 흙을 파기도 하고, 컴컴한 굴 속을 기웃거리며 돌도끼 같은 걸 찾아 헤맸다. 하얗게 바랜 새의 뼈를 주워 들여다보면서 고고학자인 양 즐거운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이번에 놀라운 사실도 알았다. 안산 대부도에서 발굴한 고려시대의 곶감 얘기다. 불그스름한 곶감 색깔은 물론이고 달콤한 향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한다. 바닷속 개흙이 유물을 덮어 오랫동안 본래의 상태를 보존한 셈이다. 전시관에 복원된 마도 1호선은 곡물 운반선으로 벼, 조, 피, 메밀, 콩 등도 있고 새우젓, 게젓을 담은 도기도 발견됐다. 다른 난파선에도 참기름, 꿀, 개고기포, 전복, 홍합 등도 실려 있었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목간이다. 목간은 일테면 운송장이다. 나무막대기에 물품 목록과 받는 이의 주소를 적어 화물에 걸어놓는 형식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먹는 것도 그렇고, 관습은 참으로 고집스럽다.

고려의 뱃사람들은 시루에 밥을 쪄먹고 젓갈이나 육류, 생선 등을 먹었다. 나는 뭘 먹을까. 신진도에서 다리를 건너 안흥항으로 갔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따뜻한 쌀밥이 먹고 싶었다. 동네 할머니가 맛있는 밥집이 있다며 알려줬다. 야트막한 오르막길 가에 노부부가 하는 자그마한 식당은 바지락탕과 바지락칼국수만 팔았다. 바지락탕의 재료는 바지락과 부추, 청양고추가 전부였다. 국물을 한 술, 한 술 떠먹을 때마다 "아우, 시원해"가 절로 나왔다. 국물이 담백하고 칼큼했다. 바지락은 또 어찌나 졸깃한지, 말간 콧물을 훌쩍이며 정신없이 까먹었다. 바지락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앞바다에서 잡은 바지락이냐고 물었다. "말하믄 뭐뎌. 아까부터 여기 돌아댕기는 거 봤는디 아자씬 낚시질 나갔남?" 내가 유물전시관 보러 왔다니까 할아버지는 옆 테이블에서 역시 바지락탕을 먹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양반도 서울서 유물전시 보러 왔댜." 서울 남자는 할아버지에게 바지락탕 맛있게 먹었다고 몇 번이나 인사하며 나갔다. 아, 내가 먹은 바지락 껍데기도 먼 훗날 화석으로 발견될 수 있을까.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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