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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칼럼]갈릴레이의 망원경과 오늘의 원자현미경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입력 2019-11-28 14:35   수정 2019-11-28 14:35
신문게재 2019-11-29 22면

구자용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동양과 서양의 천문학 수준은 1500년 무렵까지는 대동소이했다. 사람의 감각으로는 지구의 움직임을 전혀 느낄 수 없었으므로 천동설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당연했다. 유럽에서는 플라톤 철학의 이원론을 따라서 빛나는 천상의 물체들은 영원한 천상의 법칙을 따르고, 누추한 지상의 물체들은 찰나적인 지상의 법칙을 따른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행성들의 관측결과를 분석해 임종 직전 출판한 책에서 처음으로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에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브루노가 산 채로 화형당한 것은 이보다 훨씬 훗날인 1600년이었다.

지구와 천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 것은 갈릴레이의 망원경이었다. 갈릴레이는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 1610년 밤하늘을 관찰했고 목성의 둘레를 도는 위성 4개를 발견했다. 모든 천체는 지구를 돌아야 했는데 목성 주위를 도는 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또 달의 크기가 바뀌는 것처럼 금성의 위상이 바뀌는 것을 보고 금성이 지구 궤도 안쪽에서 해를 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매끈하게 은빛으로 빛나는 달의 표면에서 울퉁불퉁한 산과 같은 지형들을 보았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고 천상과 지상의 물리법칙은 같았다. 갈릴레이는 교회의 박해를 받았으나 망원경은 유럽 곳곳의 천문대들로 급속하게 보급됐고 오래지 않아 지동설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판해 지상과 천상의 운동을 하나의 법칙으로 통일한 때는 1687년이었다. 오늘날 각종 고성능 망원경들은 우리의 은하 밖에 있는 먼 외부은하들까지 관측하고 있으며 우리의 지식의 지평을 무한히 넓혀가고 있다.

한편 원자론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뜬구름같은 주장으로, 19세기 말까지도 원자들을 직접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개발된 양자역학은 비로소 원자의 구조와 특성을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엑스선 회절과 투과전자현미경은 물체 내에 질서정연하게 들어찬 원자들의 존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개별 원자들을 직접 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원리적으로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1983년 원자현미경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실리콘 기판 표면에 꽃무늬처럼 배열된 원자들을 보여주었는데 처음 3년 동안은 많은 물리학자들조차 그 놀라운 결과를 믿지 못했다. 기술은 더욱 발전해 이제는 원자 하나를 집어서 측정하고 이동시키는 단계까지 왔다. 옛날에는 원자의 세계는 모호했고 간접적으로만 측정되었으나 오늘날 실제 공간에서 개별 원자들의 특성을 직접 측정하게 됨에 따라 이 분야의 기술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람은 오감을 통한 경험으로 상식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과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믿음은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고, 나의 세계관이 다른 사람의 세계관보다 우월하다거나 진리에 더 가깝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자신의 믿음일 뿐이다. 천동설이 틀렸다고 바른말을 한 사람이 신념에 찬 다수에 의해 화형당했다.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기막힌 일들로 얼룩져 있다.

망원경과 현미경이 도입된 후 이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듯이 새로운 측정기술이 나오면 우리는 새로운 분야를 직접 접촉하게 되고 우리의 세상은 그만큼 넓어진다. 새로운 세상으로 진출하려면 그에 필요한 새로운 측정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정밀한 측정은 이론이나 원리를 초월하며 중요한 것은 과학적 절차와 검증을 거친 신뢰성 높은 측정값이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와 주장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엄밀하게 검증된 팩트들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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