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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백거이(白居易)의 버려진 거문고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입력 2019-12-09 10:50   수정 2019-12-09 10:50
신문게재 2019-12-10 23면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실 오동 합쳐서 거문고 만드니/그 속에 태곳적 소리가 있도다/옛 소리 담박해 맛이 없어서/지금 사람 감정에 맞지 않네/옥 장식 거문고 광채를 잃었고/붉은 현줄에서 먼지가 날리네/버려 놓은 지 이미 오래건만/남긴 소리는 여전히 청량해라… 백거이(772~846) 시 '버려진 거문고' 일부

당나라 시인인 백거이가 낡은 거문고 음률을 통해 단순한 세태 풍자가 아닌 삶의 성찰 사유를 시로 승화시킨 이 시는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백거이는 글이란 그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며 문장은 문장 자체에 머무르지 말고 세상의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문학의 사명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시선(詩仙)이라 칭송받는 이백은 살아서는 천재, 죽어서는 전설이 되었지만 시를 쓸 때 한잔 술에 막힘없이 한번에 써내려갔고 '시성(詩聖) 두보는 백성의 고통을 위로한 시인으로 열 번의 퇴고를 거쳤다지요. 그러나 백거이는 당시의 부패한 정치와 사회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면서도 시를 탈고할 때마다 글을 모르는 노파에게 먼저 들려주고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노파가 시의 뜻을 알 때까지 몇 번이고 고친 후에야 붓을 놓았다는 서민적인 문장가입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한가, 비파행, 진중음, 신악부, 두릉의 노인 등이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독립투사이면서 애국지사인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은 이 시를 친필로 남겼습니다. 작품 말미에 민국(民國) 37년 중춘(仲春)이라고 표기된 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1919년인지, 아니면 중화민국 신해혁명 일인 1911년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여러 자료를 살펴보다가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한 1948년에 쓰신 것으로 추측된다는 내용을 확인하였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앞두고 나라는 반드시 독립되어야 하고 민족은 반드시 철저 해방되어야 하며 사회는 반드시 자유평등하여야 한다는 해공 선생은 시대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신 분이지요. 또한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니 남의 잘난 것도 인정하여야 하며 나도 잘 살려니와 남도 잘 살아야겠다는 것이 민주주의 근본이념이라고 한 것은 요즘 정치권에서도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어찌되었건, 이 귀한 친필이 지난 10월 시절인연처럼 저에게로 왔습니다. 문경의 한학자이며 원로서예가이신 야은 권대진(1927~) 선생의 서예작품전을 열어드린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초대 수도경비사령관과 제2논산훈련소 소장을 역임하신 권준 장군(1895~1959)이 야은 선생 군전역시 선물한 것을 지금껏 소장하고 계시다가 초대전이 끝난 후 "이 작품은 내가 가지고 있으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문학관에 걸어두고 많은 사람들이 해공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면 좋겠네" 하시면서 기증하셨습니다. 야은 선생은 초대전에서 "부끄럽습니다. 저는 서예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글씨 한 자 한 자가 모두 저의 좌우명이었습니다" 하셨지요. 꼿꼿한 선비로 일평생 살아오신 야은 선생님께 다시 한번 경건(敬虔)의 예를 올립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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