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
  • 뉴스

[리야드 연가-김재석 작가]Episode.3

영어면접시험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19-12-10 14:54
에피소드3


Episode.3

영어면접시험





대략 난감했다. 영어학원에 등록한 지도 며칠 안 되는데 무슨 수로 영어면접을….

병원에 출근하니 우편물이 와 있었다. 해외 파견 근로자 면접시험 일정 통보였다. 그런데 날짜가…. 바로 일주일 뒤였다. 진짜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분명히 담당자는 언제 갈지 모른다며 일단 접수만 받는 거라 했는데….

면접일이 코앞이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노동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넣었다. 혹시 내 입장에서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담았나 싶었다. 내 처지를 여차여차 설명하다 보니, 상대편도 듣기 좋은 말로 공감해 주었을 수도 있다.

"이번 면접시험은 1차 선발팀을 먼저 뽑는 걸로 봐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만 뽑는 가 봐요. 당장 현지에 가서 일 할 수 있는 영어가능자가 우선 이예요. 자신 없으면 다음 2차 면접시험까지 기다려도 되고요."

대략 난감했다. 영어학원에 등록한 지도 며칠 안 되는데 무슨 수로 영어면접을…. 학원에서 받은 초급 영어회화 책을 펼쳐놓고 곰곰이 날짜를 따져봤다. 초급영어는 How do you do? I am fine. 이러다 한 달이 다 가버린다. 계산이 나올 턱이 없었다. 올빼미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미적거리지 말자. 이왕 가기로 마음먹은 거. 떨어지면 다음 기회도 있잖아.'

일주일밖에 안 남은 이상, 소리 소문 없이 준비하기는 어려워졌다. 일단 대학원 수업과 연구과제는 다 빼먹었다. 병원에는 연차휴가 신청을 냈다. 나는 연차수당 챙긴다고 지금까지 휴가도 안 갔는데 뜬금없이 연차휴가를 내자, 병원에서 낌새를 채기 시작했다.

그것도 엉뚱한 방향으로…. 88올림픽 응원 차 서울나들이.

맞는 말이다. 나라가 올림픽 축제로 난리도 아닌데 나 하나 잠적했다고 신경 쓸 친구도 병원 사람도 없었다. 영어학원엔 새벽반부터 나가서 죽치고 앉았다. 카드 빚을 내서 따로 과외 강사비를 지급했다. 초급영어 강사에게 오전시간 내내 회화 공부와 발음 교정을 부탁했다. 강사는 내가 팝음악을 따라해서 인지 영어발음은 괜찮다며 내 어깨 두드려주는 소리를 자주 했다. 기분이 업(Up) 되었다.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임상병리 관련 질문을 추려보았다. 영어전문서적 문장을 통째로 외웠다. 노동청 담당자에게 예비면접 때 뭘 물어보는 지 문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파견된 의사면접관이 전문분야 지식을 물어본단다. 저녁시간도 영어학원에서 보냈다.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었다.

"너 어디 아프냐?"

엄마는 어깨는 처지고 눈만 휑한 나를 보더니 물었다.

정말 엄마에게만은 들키기 싫었다. 여시 중에도 구미호 급이라서…. 어떻게든 속내를 감춰야 했다.

"딸 하나 잘 키웠어. 이렇게 돈 벌어서 엄마 손에 쥐어주려고 온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밤낮으로 일하고 말이야."

"그럼 새벽 일찍 나가서 지금까지 일하다 왔다고?"

엄마는 고개를 살랑살랑 저으며 의심의 눈초리를 비췄다.

"내가 말했잖아. 올림픽이라고 휴가 낸 놈년들 때문에, 내가 자리 메꾼다고 따블로 생고생한다고."

"보너스는 톡톡히 받겠네. 보약이라도 지어줘?"



면접 당일, 나는 아침 일찍 부산역에서 새마을호 급행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중간 정차 없이 달려 4시간 여 만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노동부 청사 면접 시험장에는 어지간한 응시자는 다 모인 것 같았다. 안내데스크에서 접수번호를 확인하고, 면접대기 장소에 가서 앉았다. 면접시험을 본 응시자가 나오자, 대기 중이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 말을 걸었다. 나는 옆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통역관이 옆에 있어. 필요하면 통역을 써도 된대. 통역을 통해 말을 했는데 마지막 면접관이 아무 말도 안하더라. 모두 아랍사람이야. 아무래도 떨어진 것 같아."

"나도 통역이 필요한데, 어쩌지. 그건 그렇고. 뭘 물어봐?"

"자기소개하고, 전공파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보라고 해서…."

나는 수험표를 꼭 움켜쥐었다. 앞선 응시자에게 한없는 애정과 공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영어가 안 되면 꽝, 이구나 싶었다. 심장 고동이 밖으로 튀어나와 뛰어다녔다. 이놈을 어디다 매놓아야 하는데….

내 차례가 왔다. 면접실 문을 여는 순간, 진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면접시험관이 모두 하얀 '깐두라'를 입고 붉은색 '케피야'로 머리를 둘렀다. 사우디아라비아 정통 복식에 대해 책에서 본 그대로였다. 더 숨 막히는 건 너무나 잘생긴 젊은 꽃미남들이다. 한국인 통역관이 물어왔다.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통역이 필요해요?"

나는 겨우 통역관에게 시선을 돌리며, "아니요. 한 번 해볼게요." 했다.

"Sit Down. Please. Can you speak English?"

왼쪽 끝 좌석에 앉은 면접관이 물어왔다.

"예스, 예스."

나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예스(Yes)를 연발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노(No)"한다고 될 일이야.

"May I ask you to introduce yourself?"

빠른 발음이었지만 소개란 말이 분명하게 들렸다. 이건 기본적으로 영어강사와 연습했던 문장이었다.

관건은 그가 더는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것, 나는 외운 영어 문장을 재빨리 입 밖으로 쏟아냈다.

"I am Su Jin Choi, 대학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고 있는 최수진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이력서에 이미 영어로 자기소개서를 써 놓아서 제가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는 지는 잘 아실 거예요. 저는 대학병원에서 4년을 근무했고, 임상병리사로 충분한 숙련을 쌓았어요. 대학원에 진학해서 임상심리사 과정을 밟고 있죠. 아마 궁금하실 거예요. 왜 대학원까지 다니는 친구가 생뚱맞게 열대 사막의 나라로 가려는지. 물론 사막이 배경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멋진 술탄의 왕국이죠. 다 불쌍한 제 어머니 때문이에요. 그 분은 자신의 노후를 자식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아~주 돈을 많이 벌어서 말이죠."

나는 손동작까지 넣어가며 진지한 표정연기를 했다. 중간에 앉은 면접관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픽, 웃었다. 나는 내 발음이 통한다는 사실에 속으로 '으싸!' 했다.

"그런데 자식이 돈벌이 수단은 아니잖아요. 저는 그런 엄마에게서 도망치려고 해요. Please. 도와주세요. 젠틀맨 여러분."

나는 마지막을 애절하게 '레이디 앤 젠틀맨'하고 말하려다 여성면접관이 없어서 속 뺐다. 외운 게 들통 나면 안 되니까.

나의 표정 연기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어처구니가 없거나.

다음 좌석에 앉은 면접관이 기침을 한 번 하며 물어왔다. 너무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데 다는 들리지 않고, 'major subject(전공과목)' 란 단어는 언뜻 들어왔다. 그가 '전공과목'을 어떤 의미로 물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내가 외운 것 외에는 답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바이러스 미생물 파트를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가며 말했다. 나에겐 올빼미 눈이 있었다.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면접관 너머에 스크린을 펼쳤다. 영어단어를 띄우고 초점을 맞췄다. 면접관을 앞에 놓고 대화를 했냐고 누가 묻는다면 천만에, 한마디로 혼신의 힘을 다해 문장을 읽었다.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면접관이 서로를 쳐다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어깨에 힘이 쫙 빠졌다.

'이제 더 물어보면 안 되는데…, 제발.'

그 순간 세 번째 앉은 마지막 면접관이 엄지척을 하며 "엑셀런트(excellent)" 했다.

그걸로 면접이 끝났다.

부산으로 내려왔을 때, 연락이 왔다. 지정병원에 일주일 안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날 준비를 하라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