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프]낙엽을 밟으며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19-12-11 17:32
  • 수정 2019-12-11 17:32
사본 -노수빈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왕성했던 잎새들이 가을 끝자락의 시간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여지없이 떨어지고 맙니다.

이따금 세찬 바람이 불면 키 큰 나무숲에서 떨어지는 수천 장의 낙엽은 일시에 날아온 갈까마귀 떼처럼 공중에서 비행하다가 회전하기도 하다가 낙하합니다.

좌우종횡 자유분방 하게 하늘에서 춤추다가 바람을 안고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한참동안 바라보면 하늘은 무대가 되어 트럼펫 부는 낙엽축제가 시작됩니다.

바람은 다시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가 빨갛게 익은 단풍잎을 흔들어 깨워서 지상으로 내려 보내면 단풍잎은 고운 오색 빛으로 반짝이다가 이미 말라버린 가랑잎무덤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그 곁에 조용히 눕습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짙게 깔린 낙엽을 밟고 걸어갑니다. 발길 옮길 때마다 발굽 뒷꿈치에선 말라버린 가랑잎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어린 시절 영혼을 불러 옛기억으로 머리를 가득 채워 놓습니다.

"시문!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하게 외친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백여년전 구로몽이 시몬을 간절하게 불러냈던 심정으로 나는 나의이름을 불러서 내 머리 위에 앉혀놓고 생로병사 들려주며 낙엽을 밟고 지나갑니다. 아픈 다리를 절며 황혼의 석양을 받으며 걸어갑니다.

건성으로 살아온 젊은 날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태어나 세상일 알만하니 떠나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나의 주변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는 걸 보면 나도 머지않아 낙엽처럼 떠날 것을 짐작합니다.

낙엽이 떠나간 상처의 자리엔 내년 봄 새잎이 돋아나고 그 자리에서 꽃도 피고 날개 접고 잠 잘수 있는 새들의 둥지도 지어지고 때 되면 그 자리를 바람과 함께 떠날 것입니다. 그때 황혼의 석양을 등에 업고 낙엽을 밟으며 가을 숲 언덕을 오르며 내 머리 속에 잠자고 있는 어린 날 영혼을 깨워봐야겠습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시몬 하고 중얼 거리던 옛 영혼을 부르며 ---

-노수빈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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