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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겨울나기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입력 2019-12-17 09:00   수정 2019-12-17 09:00

임숙빈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이런저런 일로 분주하기도 했고 12월이면 질병처럼 재발하는 미진함으로 울적해진 탓인지 집안의 화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여러 날이 지났다.

아차 싶어서 웅얼웅얼 사과의 마음을 전하며 물을 주다 보니 이미 꽃나무들은 저 스스로 겨울나기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옹골차게 달라붙어 있던 많은 잎을 떨군 영산홍의 활기는 단단한 겨울눈으로 숨어들었고, 무성하던 수국도 잎을 떨구고 반쯤 죽은 듯이 잠복하기 시작했다.

생명력 강한 칼란코에만이 잔뜩 꽃망울을 달고 신이 난 모습이다. 아, 지난 여름철 더위에 무너져버렸던 베고니아도 회복됐는지 더 튼실한 잎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식물이고 동물이고 살아있는 것들의 겨울나기가 시작됐나 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늦은 밤, 주차장에서 길고양이(길냥이)를 봤다.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한 번 더 뒤돌아보는 필자의 눈에 고양이 한 마리가 필자의 차 밑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주차할 때는 분명 근처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언젠가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시동을 막 끈 자동차 밑이 따뜻해서 겨울철 길냥이들이 즐겨 찾는다던 이야기. 자그마한 산 아래 있는 아파트여서 그런지 시내 중심지보다는 기온이 1~2도는 낮다 하더니, 이 주위를 떠도는 길냥이로서는 나름대로 터득한 겨울나기 전략인가보다.

그런데 겨울나기가 어디 식물이나 동물에게만 해당하는가? 사람,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겨울나기야말로 더할 데 없이 어렵다는 것은 우리 모두 짐작할 수 있다.

지난주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몇 달씩 일하지 못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마트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가 들켰는데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마트 주인이 용서했다. 또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돈 봉투로 격려했다는 뉴스를 봤다. 참으로 따뜻한 소식이었다.

이 가족은 이미 기초생활수급 대상이었지만 여러 명이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매우 부족했던가 보다. 때로 기계적인 복지 혜택으로 인해 열심히 살아보려는 의지를 놓아버리는 일도 있고 이런 정책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인해 물질적, 심리적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절실하다. 물론 이런 도움에는 수급자들의 본성을 망치지 않게 효과적으로 설계돼야 할 것이다.

배고파서 훔치고 반성하는 이에 대한 용서를 넘어 곤경을 이겨내라고 응원했다는 이야기는 그 아빠와 아들에게만 따뜻한 온기가 아닐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따스함이었을 것이다. 넘쳐나는 고소, 고발, 거짓과 배신 등의 뉴스로 어디 마음 붙일 데 없는 우리의 현실, 이 겨울나기에도 소소한 온기를 나눌 수 있기를./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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