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 트위터
  • 페이스북
  • 검색
  • 전체메뉴

실시간뉴스

닫기

[사이언스칼럼]빛에게 바치는 연서(戀書)

정영욱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입력 2019-12-26 14:30   수정 2019-12-26 14:30
신문게재 2019-12-27 22면

정영욱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정영욱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20여 년 전 겨울, 시베리아 출장을 갔었습니다. 지금은 직항이 있지만 그 당시엔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했었지요. 우기인 겨울의 모스크바는 짙고 두터운 구름 밑에 있었습니다. 비행기는 끝도 없을 것 같은 구름 겹을 헤치며 모스크바 공항을 향해서 고도를 낮추고 있었고, 구름 밑의 공간은 당신조차 스며들지 못할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드러난 모스크바는 밝지는 않지만 그래도 충분히 사물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대는 늘 그렇듯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인류는 당신을 무척이나 연모하며 진화해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눈으로 보는 것은 당신이 아닌 주위의 사물과 그 변화들입니다. 도대체 우리 선조들은 어떠한 경험이나 추론으로 당신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짧은 생각이지만, 우리 선조가 불을 사용하면서 광원(光源)으로 사물을 비춰 본 경험이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인류의 첫 번째 빛인 불은 추위도 해결했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어둠이라는 두려움에서 구해주었지요. 세월이 흘러 인류는 당신을 정교하게 만들어내고 다루는 기술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과학자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굳혔지요. 그 결정적인 계기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쉽게 설명돼 있던 문고판 책이었습니다. 그 얇은 책에서 '항상 일정한 속도를 가지는 빛', '그보다 더 빠른 속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 배웠고, 나는 마치 당신을 통해 우주의 비밀을 엿본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할 즈음의 나는 자연의 법칙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나는 작은 변화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책하며 움츠러들고 있었을 때 나를 구원해준 것이 당신에 관한 학문인 '광학(光學)'이었습니다. 당신은 드디어 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실상(實像)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정리하려고 해도 혼란스럽기만 했던 나의 마음이, 이미 알고 있었던 길처럼 당신을 받아들이고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나름 오랜 기간 당신을 만들고 다루었고, 그래서,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여전히 당신의 민낯조차 알지 못하는 한심한 상태인 것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파동이면서도 입자라고 현대 물리학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동과 입자는 공간에 대한 점유의 개념에서도 큰 차이가 있지요. 경험적으로 입자는 특정한 작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파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파동은 확률적으로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점입가경인 것은, 최근 양자과학이 발전하면서 단일(單一) 광자(光子)를 만들고 활용하는 기술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단일 광자, 단 하나로 되어 있는 당신의 알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내가 가진 경험과 논리는 더 수렁에 빠져듭니다.

어쩌면 나는 당신의 본질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보여주는 색상의 아름다움, 아니 그 색으로 물들여진 세상의 다채로움과 경이에 마음을 빼앗긴 채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나 봅니다. 아! 그렇군요. 누군가를 다 알고 나서 마음을 주는 경우는 애초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군가가 내 내면의 사소한 무엇인가를 울리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내 마음을 가져갈 조건은 충분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당신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에 대한 연모의 끈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영욱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오늘의 핫이슈
중도일보가 알려주는 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