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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새해에 두뇌를 리셋하는 설렘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19-12-30 08:33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이사장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는 또 다른 시작이 달려있다. 수많은 하루하루를 1년으로 묶어서 시작과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으로 구분한 달력의 역사는 수만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날짜를 세어 동물 뼈에 자국을 남겼고, 해와 달, 별 등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해 달력을 만들었다.

이 땅에 빌붙어 살아가는 많은 생명은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맞춰 태어나 자라고 살다가 후손을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달력이 없이도 DNA에 새겨진 행동 요령에 따라 계절의 변화에 맞춰 살아간다. 지구 최상의 포식자인 사람도 자연스레 이들의 삶과 죽음의 주기에 맞춰 살아가도록 진화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1년은 365일, 4년마다 윤년이라는 규칙을 정한 그레고리오 달력을 사용한다. 복잡한 사회 구조와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1년이라는 주기는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는 이상의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다.



새해는 지난 1년간 힘들게 살면서 실타래처럼 엉클어진 흔적을 초기 상태로 포맷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다가온다.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이러 저러한 프로그램들과 바이러스 때문에 속도가 느려진다. 때로는 백신으로 치료가 안 되는 악성 코드에 감염되어 결국 포맷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사람의 뇌도 안 좋은 기억과 실패의 경험이 쌓이면 정상적인 사고가 어렵고 의기소침해 새로운 도전을 꺼리게 된다. 포맷해 희망을 재장전하는 것이 필요한데, 새해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2019년도 어느새 달랑 하루만 남았다. 늘 반복되는 똑같은 나날이지만, 한 해 끝자락에서의 하루는 새해 벽두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즈음엔 연초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또다시 새해의 결심을 설계하느라 마음만 바쁘다. 초하루라고 해도 지난해 마지막 날인 어제와 별반 다를 리 만무한데도, 새해에는 첫날부터 무언가 잘 될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스무 살에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10년 후 애플을 20억 달러의 매출에 4,000명의 직원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시켰지만, 회사에서 쫓겨난다. 잡스는 이후 넥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키웠고, 애플이 넥스트를 사들임에 따라 애플로 복귀했다. 이후 그는 회사가 침체에 빠지자 다시 CEO가 되어 애플을 시가 총액 세계 1위의 회사로 키웠다.

그런데 애플의 르네상스는 놀랍게도 잡스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이 핵심이 돼서 일어났다. 나중에 그는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이 나의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좌절을 딛고 다시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아이폰도, 요즈음 핫한 음원 스트리밍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힘든 일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지만, 그 고통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계속 괴롭힌다. 마치 악성 코드가 심어진 것처럼 정상적인 삶이 방해받는다. 그래서 가끔가다 한 번씩은 온갖 시름으로 엉클어진 머리를 렘수면 이후의 호수 같은 상태로 리셋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는 새해 첫날을 한 해 동안 엉클어진 두뇌를 리셋하는 기회로 활용하곤 한다. 한 해 동안 애썼는데 이루지 못한 것들은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새해의 resolution(결심)을 재장전한다. 이 시기의 내가 1년 중 가장 자유롭고 창조적이기를 기대하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리셋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나뿐인 생은 그 끝에 다다르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지 않고 사그라든다. 이번 생은 꽝이라고 불평만 할 수는 없다. 아픈 기억을 떨치고 일어나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지난해는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 하더라도 지난 한 해 동안 흘린 땀이 새해에 우리가 소망하는 일의 결실로 이어줄 것이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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