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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기의 말씀 세상] 죄인은 용서하되 죄는 용납 말라

이홍기/ 좋은 감리교회 원로목사, 칼럼니스트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0-01-16 00:00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투월초(鬪越椒)의 난을 평정한 뒤 공을 세운 신하들을 위로하기위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밤이 되도록 주연은 계속되었고 한참 주흥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갑자기 왕의 애첩, 총희가 소리를 질렀다.

총희는 왕에게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자가 있어 그 자의 갓끈을 뜯었으니 불을 켜면 그자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고하였다. 그러나 왕은 촛불을 켜지 못하도록 제지하고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오늘은 과인과 함께 마시는 날이니 갓끈을 모두 끊어 버리라" 고 엄명하였다. 신하들은 모두 갓끈을 끊어버리고 계속 잔치를 즐겼다.



이로부터 3년 후 초나라와 진(晉)나라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초나라가 불리해 지면서 장왕이 위기에 처했다. 이때 장웅(壯(雄)이라는 장수가 나타나 왕을 구하고 적을 격퇴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이 장웅을 크게 칭찬하면서 상을 내리려하자 장웅이 말했다.

"대왕께서 3년 전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연회 때 갓끈을 뜯긴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대왕의 은혜로 죽지 않고 살았으니 소신 목숨 받쳐, 그 은혜에 보답코자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장왕은 신하의 죄를 용서한 덕분에 부하는 그 은혜에 감동하여 더 큰 충성과 헌신을 바친 것이다.

이를 고사성어로 절영지연(絶纓之宴)이라한다. 잔치에서 갓끈을 끊는다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해주면 보답이 따른다는 비유이다.

성경에도 용서에 대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는 장면이다.

어느 날 유대인들이 여인을 데리고 와서 "선생이여 이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나이다. 율법에 간음한 여인은 돌로 치라고 돼있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였더니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모두 도망갔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였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 한 것은 죄인은 용서하지만 죄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온누리교회 담임을 했던 고 하용조 목사는 "진정한 용서는 잘못의 댓가를 대신 치려주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짐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한량없는 은혜를 받았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받은 것으로 나도 이웃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천국의 계산법이다.

죄인은 용서하더라도 죄를 용납하여서는 안 된다. 죄를 용납하지 않으려면 잘못된 제도, 정책, 관습과 싸워야한다.

링컨대통령은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하는 죄악이므로 폐지를 선언했다. 남부사람들은 링컨에 항거하여 남북전쟁이 일어났지만 링컨은 승리함으로써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를 지켰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더 이상 보복은 없었다.

영국의 양심이라고 불리던 윌리암 윌비포스도 노예무역을 용납하지 안 했다. 당시 노예무역은 영국의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였기에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클레팜(청교도들로구성)이란 공동체와 함께 그의 일생을 바쳐 노예무역과 싸웠다.

승리한 후에는 노예무역선의 선장이나 선주를 고소하지 않았다.

죄를 생산하는 제도는 폐지했지만 관계되는 사람들은 용서한 것이다.

마틴루터 킹 목사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흑인 인종차별을 용납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인종차별제도는 폐지하였지만,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는 보복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처벌은 하나님께 맡겼다. 두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다. 킹 목사는 암살당했고 만델라는 27년간 옥고를 치렀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죄인을 용서하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한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됩니까?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일곱 번이라도 일흔 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즉 무한정 용서하라는 것이다.

한 번도 용서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무한정 용서할 수 있을까? 사람의 성정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을 하면서 성령을 보내 주셨다. 우리가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면 불가능은 없다.

그렇다 내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마음속에 있는 예수님이 용서하는 것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홍기/ 좋은 감리교회 원로목사, 칼럼니스트

이홍기 목사님-210-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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