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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지나침과 부족함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입력 2020-01-21 10:36   수정 2020-01-21 10:36
신문게재 2020-01-22 23면

임숙빈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서울에 다녀오는 길, 터미널에 이르자 문득 집까지 걸어갈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평소 가까운 거리라 생각은 하면서도 걸으려고 마음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십여 일 전 다녀온 여행이 필자의 도전의식을 부추겼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제법 먼 거리도 곧잘 걸으면서 내 나라에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걷다 보니 올해 초 동아시아 국가들이 돌아가며 개최하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다녀온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반추하게 됐다.

치앙마이는 처음 방문하는 곳이고 요즈음 유행하는 '... 에 한 달 살아보기'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이라 은근히 기대가 컸다.

너나 할 것 없이 생각이 비슷한 걸까, 참석자가 천이백명을 넘을 만큼 학회는 성황을 이뤘다. 개최국에서는 민속공연까지 볼 수 있는 대형 식당에서 초청 만찬을 제공하며 손님 접대에 여유를 보였다.

야외무대, 조명과 함께 블링블링, 반짝이는 의상과 간드러진 악기 소리나 춤사위에 들뜨던 즐거움도 한 시간 이상 공연이 계속되자 언제 끝나나 싶은 마음으로 변했다.

게다가 앞에 놓인 음식은 바닥이 보일 새라 연신 채워지고 있어서 한 상 가득 차려지는 한정식에 익숙한 우리 눈에도 신기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태국의 교수에게 음식을 계속 채워주느냐고 묻자 그렇다며 웃는다.

곧 '남는 음식은 어쩌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들의 문화이거니 싶어 더는 캐묻지 않은 채 함께 웃었다. 여하간 조금만 짧았더라면, 조금만 적었더라면 더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학회 끝자락에서도 그랬다. 우수한 논문 발표에 상도 주고 감사의 인사도 나누는 자리이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후한 인심답게 엄청 많은 상을 준비했다.

그런데 일일이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가 상을 받고 시상자와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신나던 처음 분위기는 대표자들만 남고 텅 비어버리는 파장이 되고 말았다.

대학원생 참가자들의 입장에서는 무대에 올라 직접 상도 받고 사진도 찍는 소중한 경험을 하는 것이므로 끝까지 기꺼운 마음으로 박수를 쳤지만 역시 조금 짧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떠오른 단어는 '조절'이었던 것 같다. 도시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동안 사원을 가장 많이 둘러보았다.

불교 국가답게 사원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마음의 수양을 돕는 문구들이 곳곳에 쓰여 있고, 법당(?) 안에는 의자도 놓여 있어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지기에 좋아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해봄 직하다고 하는가?

하지만 개방적인 사람이 아니면 사원에 들어가는 일조차 꺼릴 수도 있으니까 이도 보편적인 요인은 아닌 것 같다. 물가도 싸고, 음식도 괜찮고, 치안도 그리 나쁘지 않다지만 대단히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여느 휴양지처럼 자연이 매력적인 것도 아니며 계절 탓인지 스모그도 만만치 않은 이곳에서 사는 게 좋다니.

하루 이틀 지나 낯섦이 조금 줄어든 채 큰 길을 벗어나, 각기 다른 모양의 자그마한 단독 주택들이 대부분인 동네, 길을 걷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고층·초고층, 고속·초고속의 수직 상승적 기류에 휩쓸려 나와 다르면 온통 적으로 치부하는 경쟁적 구도 속에서 잠시 멈춰서는 수평적 흐름에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별 것 없는 일상에서 별생각 없이 지낼 수 있는 게 휴식일 터이니 말이다. 아무튼, 지나친 속도는 미치지 못하는 속도보다 나을 게 없으니, 더 잘 살기 위해서 조절 기전이 움직인 것일 수 있다.

그렇다. 적당히 조절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우리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어느새 모퉁이만 돌면 집에 이르는 저녁, 자동차로 스쳐 지났던 상점들의 상호나 불빛을 새삼스레 느끼며 지나침이 부족함이 되지 않게 조절을 생각하는 작은 여행을 마쳤다.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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