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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설원이 펼쳐진 무주 향적봉을 가다

염재균/수필가

입력 2020-02-25 00:00   수정 2020-02-25 00:00

2020년 2월 20일(목요일)

필자의 아내가 집에만 있는 것이 삶에 대한 의욕이 자꾸만 없어지는 우울증에 걸릴까 걱정되어 삶의 에너지를 충전도 하고 올 겨울동안 눈 구경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절기상으로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난 다음날인 목요일에 아내를 데리고 인 근 버드내아파트에 사는 절친한 형님 내외분과 같이 대전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겨울의 낭만 스키타기 좋은 설원이 펼쳐져 있다는 덕유산 자락인 무주리조트의 스키장을 찾아갔다.

주말이 아닌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스키장으로 몰려와 매표소와 가까운 주차장은 벌써 만차(滿車)가 되어 포장이 되어있지 않은 곳으로 가서 주차를 하여야만 했다. 주차를 한 뒤 매표소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하얀 설원이 펼쳐진 슬로프에서는 스키와 썰매를 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며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스키를 배우려는 초보자들은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고 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 일행은 스키를 타러 온 것이 아니고 산 정상에 펼쳐진 하얀 눈과 향적봉의 경치를 둘러보고 스키 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왕복 이용권을 사서 출발지점에 잠시 동안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되어 다른 일행 3명과 같이 관광용 8인승 곤돌라를 타고 2,750m 구간의 대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산 전체를 뒤덮은 하얀 눈과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귀한 약재로 쓰이는 수많은 겨우살이가 우리를 반겨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상까지의 운행시간은 20분정도로 하차지점에 이르니 하얀 눈에 반사된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서 가져간 썬 글라스를 써야만 했다. 출구에서 발걸음을 조금 옮기니 일부러 눈을 만들어 놓았는지 미끄러운 곳이 많아 아이젠을 신발에 차고 다니는 등산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정상 주변을 둘러보니 생명을 다한 나목 몇 그루가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도 꿋꿋이 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반겨주고 있는 듯 보인다. 스키와 썰매를 잘 타는 사람들이 출발하는 시발점 부근에서 산행하러 온 여러 사람들과 같이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탄성을 질러 본다.

향적봉으로 향하는 길 입구 주변에는 많은 눈이 쌓여있고 많은 나뭇가지에는 눈에 솜사탕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하얗게 핀 매화를 보는 것 같아 추억으로 남겨두기 위해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향적봉까지 가는 거리는 600m로 얼마 되지 않아 산행이 쉬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계단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은데다 응달진 곳이 많아 눈이 쌓여 계단이 보이질 않고 빙판의 연속이라 아이젠을 하지 않은 필자와 같이 간 형님은 안전한 산행을 위하여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필자의 아내와 형수님은 평소에 무릎이 좋지 않은데다가 내려오는 2~3명의 여자들이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안전을 생각하여 향적봉 산행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힘들어 하며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나무들이 하얀 옷을 입고 춤을 추며 힘들게 산행하는 등산객들에게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것 같아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한낮이 되면서 기온이 급격하게 오르니 계단에 쌓였던 눈들도 녹아 치부를 드러내고 등산객들에게 산 정상으로 쉽게 접근하게 허락해주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보이면서 힘을 내어 발걸음을 재촉하니 드디어 1,614m의 향적봉을 가리키는 표지만이 눈에 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정상의 이곳저곳에서 설원이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감상하며 삼삼오오 모여 추억의 사진을 찍어대느라 분주해 보인다.

향적봉 정상에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눈이 녹아 안타까웠다. 정상의 모습이 하얀 눈으로 감싸여 있었더라면 제대로 겨울산행의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 속에 다음을 기약하며 올라올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계단 난간을 잡으며 무사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무사하게 내려오고 난후에 스키모양으로 만들어진 긴 의자에 앉아 가져간 커피포트의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 한잔을 자연과 벗 삼아 마시니 산행 후라 그런지 오늘따라 커피 맛이 일품이다. 필자의 아내도 향적봉 산행은 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올 겨울에 보기 힘든 하얗게 쌓인 눈을 마음껏 보았으니 스트레스가 풀렸다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밑으로 내려가는 곤돌라를 타고 주변의 설경을 감상하다보니 어느덧 종착지에 도착했다. 아내와 형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어릴 적 비닐포대로 눈썰매 타던 생각이 나 그런 시설이 있냐고 관계자에게 물어보며 다음에는 아들 손자하고 오고 싶다고 한다.

곤돌라 탑승과 산행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있어 뱃속이 야단이다. 점심은 무주ic 입구 근처에 있는 만남의 광장에서 휴식도 취하고 지역 특산물 구경도 할 겸해서 중화요리를 잘하는 식당을 찾아갔다. 우리 일행은 갈비짬뽕과 짬뽕 등을 주문했는데, 보통 짬뽕하면 국물이 매워 먹기가 거북해 대부분 남겼지만 이집의 국물 맛은 맵지가 않아 양이 많은데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특히 갈비 맛이 필자에게는 다시 생각나고 앞으로도 가고 싶은 맛 집으로 기억될 것이다.

설원이 펼쳐진 무주의 자랑인 리조트에 스키 마니아들과 곤돌라를 이용하여 겨울산행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 직접 가서 느끼고 보면서 필자를 비롯한 두 부부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직접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인 《한서(漢書)》의 〈조충국전(趙充國傳)〉에 나오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 성어가 떠올랐다.

고사 성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전한(前漢)의 제9대 황제 선제(宣帝:BC74~BC49) 때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 계통의 강족(羌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전한의 군사는 필사적으로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였으나 대패하였다. 고민 끝에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 병길(丙吉)에게 토벌군의 적임자를 누구로 하였으면 좋겠는지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조충국은 이미 76세의 백전노장이었지만 아직도 실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원기가 왕성하였다. 그는 일찍이 제7대 황제 무제(武帝:BC141~BC87) 때 흉노 토벌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직속 부하로 출전하였다가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과감하게 진격하여 전한의 군사를 무사히 구해내는 전공을 세웠다. 이러한 혁혁한 전공으로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병길이 조충국을 찾아가 선제의 뜻을 전하니 바로 자신이 적임자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선제는 조충국이 명장임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불러들여 강족의 토벌 방책에 대해서 고견을 물었다.

조충국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합니다. 무릇 군사란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술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므로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金城郡:지금의 간쑤성 난주 부근)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펴본 다음 방책을 아뢰겠습니다[百聞不如一見兵難險度臣願馳至金城圖上方略]"라고 대답하였다. 조충국은 선제의 윤허(允許)를 받고 현지로 달려가 지세와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포로로 잡힌 전한 군사로부터 정보를 캐낸 뒤 선제에게 "기병보다는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방책을 제시하였다. 이 방책이 채택된 이후 강족의 반란도 차차 수그러졌다고 한다.

이처럼 백문불여일견은 조충국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뜻으로, 앞으로는 말로 여러 번 하는 것보다는 현지를 직접 방문하거나 답사하여 인생이모작 시대에 살아가는 데 있어 아내와 이웃과 함께하는 여가를 즐기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하루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겨울철 설경의 명소인 무주의 향적봉을 둘러싼 산 아래 펼쳐진 눈꽃송이가 장관을 이루는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염재균/수필가

6-염재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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