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아침단상 (924)]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최고은 기자

최고은 기자

  • 승인 2020-06-29 09:05
  • 수정 2020-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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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나 고민이라는 말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요. 죽음이라는 말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은 고민이나 고통이 삶의 무게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밟고 넘어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삶의 빛깔이 달라진다고 하면서 '고민하라. 더 많이 고민하라'고 하셨지요. 한동일 변호사는 <라틴어 수업>에서 라틴어 명구를 소개하면서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했습니다. 한분은 삶은 고통이라고 했고 라틴어 명구는 삶은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고통이나 희망은 다른 말인데 결국은 같은 말이 되어 버립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이 있는데 '잘 될 것이다, 나아질 것이다'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있어야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죽기를 싫어합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죽음의 중지>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에 대해 얘기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세상을 간구합니다. 소설에서 총리가 왕에게 "우리가 다시 죽기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경고하지요. '죽음이 정지된 땅'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죽음밖에 없다'라고 자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교회도 없다"는 깨달음을 주었지 않았을까요?

다시 라틴어 명구로 돌아가면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지만, 독립투사가 죽는다고 독립운동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스승이 죽는다고 해서 그가 가진 기술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한동일 변호사의 말대로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한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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