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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입맛의 양념치킨 개발이 성공 요인”

박기성

박기성

  • 승인 2003-12-01 00:00

신문게재 2003-12-01 11면

호남고속도로 계룡IC 인근인 충남 계룡사 두마면 왕대리 258번지에 위치한 (주)페리카나 본사 회장실은 단순하게 치킨회사의 CEO가 머무는 사무실이 분명 아니다.

(주)페리카나 양학권 회장(50)은 이곳에서 치킨회사의 업무뿐 아니라 골프장사업, 자동차 부품 사업 및 전기자동차 사업에 이르기까지 총괄하고 있다.

때문에 바쁜 양 회장에게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기자를 만난 양 회장은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며 사업가로서의 왕성한 활동을 넌지시 과시했다.

양 회장이 이처럼 바쁜 것은 전국 2500여 곳의 페라카나 치킨 체인점을 총괄해야 할 뿐 아니라 지난해 인수한 ‘에딘버러컨트리클럽(구 대둔신CC) 경영 정상회에도 심혈을 기울여 오기 때문이다.

아울러 3년 전에 인수한 대전 4공단의 시스템창호 경영 및 지난 6월부터 시작한 '모비스’사업 등으로 인해 눈코뜰 새가 없다는 것. “치킨 사업만해도 엄청난 규모입니다.

하루에 닭을 7만~8만마리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어김없이 정 해진 물량을 대려면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가 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8년 약품회사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쳐 잠시 쉴 때 친구 아버지가 경영하는 양계장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부터다.

반년이 채 안되는 기간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닭을 기르는 방법은 물론 유통구조 등 치킨사업의 기본적인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익혔 다.

특히 누나가 살던 미국을 둘러본 그는 프랜차이즈 사업 개념에 눈을 뜨게 된다.

“뉴욕은 물론 시카고 등을 두루 둘러 보며 체인사업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하게 됐지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패스트푸드 산업이나 프랜차이즈 유통 개념이 없었던 때니까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의 치킨사업은 이렇게 출발했다.

사실 처음에는 치킨이 아니라 햄버거였었다.

햄버거를 대량으로 납품해오던 그는 81년 대전역 인근에 페리카나 1호점을 오픈했다.

당시는 생맥주집에서 팔던 전기구이 통닭이나 캔터키 치킨 정도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아직 프랜차이즈 개념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이었다.

“처음으로 전문적인 치킨점을 차린 겁니다.

CI작업을 위해 충무로를 오가며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페리카나를 키워간 것이지요” 이렇게 시작한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 1호인 페리카나는 탄생과 함께 급성장해 나갔다.

82년 대전시 가장동에 패리카나 상사를 설립한 그는 1년만에 500여개의 가맹점을 오픈 시켰으며 강원지사 및 서울 영업소 오픈 등 쉴새없이 돌아갔다.

84년 특허청에 페리카나 상표를 등록한데 이어 85년 대전시 가수원동에 제1공장을 준공하면서 가맹점의 시설과 식자재를 자체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양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가맹점이 개설될 때마다 시설 인테리어는 물론 조리 방법 전수 등 정말 바쁘게 돌이다녀야 했어요. 대전권은 물론 강원도, 경상도 등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하니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렇게 돌이다니면서도 가맹점이 불어나가는 재미에 피곤한 줄 모르던 시절이었지요”

충남 홍성 빈농 출신의 그가 서서히 꿈을 가꿔나가던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그저 잘 먹고 좋은 옷 입는 것 뿐이었다.

낚시를 즐기던 부친이 어느 날 낚시터에서 카바이트통 폭발 사고로 쓰러진 후 그는 고교 1년을 마지막으로 학업을 접은 채 생업전선에 나서야 했다.

그 이후 그는 서울에서 막노동을 비롯해 구두닦이, 식당 종업원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본인 스스로 100가지 일은 해본 것 같다고 할 정도니 페라카나 치킨으로 정착하기 전까지 그의 인생 유전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하고 있다.

육계사업의 원조인 그가 페리카나를 성공 브랜드로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는 다름아닌 양념치킨과 소스이다.

단순한 프라이드 치킨에서 한 걸음 나아가 고추장, 양파, 마늘 등을 원료로 한국형 양념 소스를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양념치킨을 만들었다는 것이 바로 성공 요인이었던 것 같이요. 서구의 프라이드 치킨에서 한국형 양념 치킨으로의 확대가 유통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진 셈이지요. 양회장은 올해 4공단 내‘시스템창호’ 를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3000평 부지에 2000평의 공장도 건설했다.

지난해 이곳에서만 l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알루미늄 창호를 만들던 공장이었지만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전기자동차까지 연구 중이다.

치킨사업에서 이젠 미래 사업의 하나인 전기자동차까지 발전한 것이다.

아울러 현대 기이차 대전 충남북 부품지원센터도 양회장을 더욱 바쁘게 만들고 있다.

모비스의 월 매출도 10억원이 넘는다.

이같은 사업 다양함에 대해 양 회장은“무리한 기업, 비전없는 기업은 손대지 않는다”며 “어음 한번 써본 적 없고 은행에서 돈 빌려 본적 없다"고 강조 한다.

양회장 말은 시스템창호 및 모비스의 비전을 시사해 주고 있다.

양희권 회장의 특징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가 고객들을 중시하는 것 못지않게 직원들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이다.

지난해 에딘버러 컨트리클럽을 인수하면서 골머리를 앓던 노조문제도 특유의 인간경영으로 해결 했다.

직원들과 더불어 일하는 그의 소탈함에 급기야 노조마저 양회장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는 것.

"기업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조직원 전체의 것으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원리를 알고 조직원을 중시하는 경영을 해나가는 것이 오너의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

치킨사업으로 성공기업인의 반석에 오른 양화권 회장, 그의 기업경영 행보가 어떻게 이어져 나갈지 기대된다.

박기성 기자 happyday@joong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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