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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전 시작된 한민족 전통 수련법

국학기공의 역사

강순욱 기자

강순욱 기자

  • 승인 2011-01-27 14:12

신문게재 2011-01-28 10면

국학(단학)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연방(桓國聯邦)의 한인천제는, 인간은 누구나 인간의 실체인 신성(神性 혼, 自我)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 했으며, 이러한 수행법은 '신선도(神仙道)'나 '풍류도(風流道)'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왔다.

이 깨달음의 법은 신시배달국을 세운 제1세 한웅천황(거발한 한웅)에게 전해졌으며, 한민족의 건국이념이 들어 있는 3대 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을 통해 후대에 전달됐다.

고조선시대인 단군조선 제1대 단제(단군왕검) 때에는 단학이 집대성되고 널리 보급돼 우리 민족은 선도를 통해 심신의 단련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추구하며 살았고, 깨달음의 문화를 꽃피워 이웃의 국가나 종족들에게 전했다.

삼국시대 국학(단학)의 전통은 삼국 시대의 국가인재양성제도로 이어졌다. 100만 수나라 대군과 30만 당나라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고구려의 기상은 국학(단학)수련으로 심신을 연마했던 을지문덕, 을파소, 양만춘, 연개소문 등 조의선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신라의 화랑들도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는 수행자들이었으며 그들이 단전을 두드리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산을 울렸다고 한다. 백제에서도 문무도를 통해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단학은 고려 초기에 국자랑 제도로 계승됐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동학의 정신과 외세침입 때마다 일어난 의병들의 정신으로 겨우 그 명맥만이 이어져 왔다.

일제 강점기 국학(단학)의 맥은 거의 끊어졌지만,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홍암 나철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으로 계승돼 간신히 명맥이 이어졌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단전호흡이나 한민족의 전래 심신수련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학에 대한 붐이 일어나고 있다.

국학기공은 현대 국학(단학)기공의 창시자인 이승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총장이 1980년 안양 충현탑 공원에서 중풍환자 한 사람을 두고 지도한 것이 시초가 됐다.

국학기공은 이후 1986년부터 서울, 부산, 울산, 마산 등 전국 주요도시로 확대 보급돼 1996년 전국 82개 공원 수련장 출범으로 이어졌고, 1998년 전국 공원지도강사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단학기공체조연합회 발대식 이후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2001년에는 국민생활체육협의회에 가입돼 본격적인 국민생활체육으로 발돋움했으며, 2007년 단학기공연합회에서 국학기공연합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 총장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이 활동은 전국 각지의 노인정, 노인복지회관, 공원, 학교 운동장, 약수터, 군부대, 직장 등 5000여 곳에서 동호인클럽 수련지도를 통해 홍익인간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기쁨을 체험하며 수많은 국학(단학) 강사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강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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