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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건강한 이혼을 생각하며

[시사 에세이]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 승인 2013-08-12 14:44

신문게재 2013-08-13 20면

▲ 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 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지금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 녀석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나는 서산지원으로 발령이 나서 금요일에 대전에 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다시 서산으로 출근하기를 2년 동안이나 반복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자 아들 녀석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아빠를 보면 조금씩 말을 더듬기 시작하다가 월요일 새벽에 아빠가 살짝 도망가고 난 후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금요일이 되면 다시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화요일이 되어야 정상으로 돌아오고 조금 더 지나자 수요일이 되어야 정상으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아예 말을 더듬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집사람과 나는 아들 녀석의 말 더듬는 것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을 다녔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도는 더 심해져서 한 마디를 내뱉기 힘든 지경까지 되었다. 그러다 서산지원 근무가 끝나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온 다음부터 아들 녀석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고, 몇 개월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한 아이가 되었다.

아들 녀석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와 분리된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은 언어 발달이나 학습능력이 저하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나는 아들을 통해 몸소 경험하였다.

나는 이혼 자체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보기 싫은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화목하게 살면 좋겠지만 이미 회복할 수 없도록 부부사이가 깨어진 경우라면, 자녀에게도 한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것이 매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나 혼자서, 혹은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가정을 가꾸어 가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혼을 하되 보다 아름답게 헤어지는 법을 알아야만 상처없이 새로운 모습의 가정을 가꾸어 갈 수 있다.

이혼과정에서 상처나 갈등을 줄이면서 건강하게 헤어지는 것이 이혼의 후유증을 줄이고, 자녀에게는 서로 각자 그리고 때로는 양육의 동역자로서 함께 바로 설 수 있는 길이다.

가끔씩 이혼 과정에서 쌓인 상대방에 대한 나쁜 시선과 감정 때문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경우가 있다. 더 심한 경우는 아예 자녀를 보지 않거나 상대방이 자녀를 만나는 것조차 방해하는 경우를 본다.

양육비는 한편으로는 부모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혼한 부모가 자녀에 대해 갖는 소중한 권리이기도 하다. 이혼으로 엄마나 아빠의 빈자리가 생긴 자녀에게 경제적으로나마 빈자리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해 줄 수 있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남아 있는 아빠와 엄마의 자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마지막 사랑이기 때문이다.

면접교섭권도 부모 중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일방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자녀의 권리이기도 하다. 면접교섭은 이혼한 아픔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자녀에게 있어서는 부모 일방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수단임과 동시에 자녀의 복리와 올바른 성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혼은 이혼 당사자보다 자녀들에게 더 큰 고통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의 잘못으로 이혼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자녀들은 부모를 선택할 권리조차 없다.

피할 수 없어서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다면,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은 서로에 대한 미운 감정을 털고 건강하게 헤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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